[Global View] Column of the week‥위기해법, 케인스 대신 하이에크에 길을 묻다

러스 로버츠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 부양책은 재정적자만 불려…
톱 다운 방식의 규제 확대보다
'개인의 협력' 에 맡겨야 지속 발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19세기에 태어났다. 그가 대표 저서인 '노예의 길(The Road to Serfdom)'을 쓴 것은 65년 전이다. 그는 성(姓)이 같은 섹시한 멕시코 여배우 셀마 헤이엑(Salma Hayek)만큼 유명하거나 인기가 있지 않다. 그런데 왜 그런지 요즘 하이에크가 뜨고 있다.

TV쇼 진행자 글렌 베크가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하이에크의 고전 '노예의 길'을 상세히 소개하자 이 책은 단숨에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1위에 올랐고 지금도 톱 10에 올라 있다. 하이에크와 그의 오랜 논쟁 파트너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로 분장한 인물이 등장하는 랩 비디오 '거품 붕괴를 두려워하라(Fear the Boom and Bust)'(참고:필자가 영화감독 존 파폴라와 함께 제작)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140만건을 넘었고 10개 언어로 자막이 번역됐다.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잊혀져 가던 이 오스트리아 태생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왜 갑자기 관심을 끄는 것일까. 하이에크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제학자 가운데 유일하게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대안정기(Great Moderation)'가 '대불황(Great Recession)'으로 끝난 후 현시대의 살아있는 경제학자들은 신뢰를 잃었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한 불안감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눈을 돌리게 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부은 것도 FRB가 1930년대 대공황 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밀턴 프리드먼의 비난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정 측면에서는 케인스가 갑자기 부상했다. '케인시안 승수(Keynesian multiplier)'와 '총수요 확대' 등이 회자되며 각종 경기부양책이 통과됐다.

그런데 경기부양책이 실업률을 낮추는 데 별반 기여하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급증하면서 자연스럽게 하이에크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는 지금 같은 시기에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중요한 네 가지 아이디어를 옹호했다.

첫째,하이에크와 루드비히 폰 미제스 같은 동료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경제라는 것이 케인스학파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주장했다. 교사들의 고용을 유지해 총수요를 확대하는 것이 현재와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은 건설노동자나 제조업체 근로자들에겐 거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더 많은 집을 구입하지 않으면 건설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녀야 한다. 반면 케인스학파는 땅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것조차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돈이 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땅파는 사람들의 임금을 올리는 효과만 가져올 뿐 다른 부문으로의 파급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둘째,하이에크는 경기 사이클에서 FRB의 역할에 주목했다. 실제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2002~2004년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주택시장 거품을 초래했고 투자결정들이 왜곡됐다. 지금의 통화정책도 주택시장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정을 늦추고 있다. 셋째,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주장했듯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불가분하게 상호 연계돼 있다. 중앙계획경제에서 국가는 불가피하게 우리가 하는 일, 즐기는 것,사는 장소 등을 제한한다. 정치적 반대세력은 행동하고 말하고 글쓰는 데 정부의 허락을 필요로 하게 된다. 경제통제는 정치통제로 이어진다.

심지어 국가가 '공익(公益)'이란 이름으로 경제의 일부분만 조정하려 할 때도 국가권력은 그런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부패하게 만든다. 하이에크는 강력한 관료체제는 '천사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료체제는 다른 이들의 삶을 좌지우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돌보기보다 자기 친구들을 챙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을 키우는 것이 매력적임을 느끼게 된다.

하이에크의 네 번째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는 지시가 위에서 아래로(top down)뿐 아니라 아래서 위로(bottom up)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지시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연방정부의 통제를 확대했다. 에너지 마켓에도 같은 일을 하려고 한다. 정부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통해 모기지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또 미국 주요 기업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다. 대통령은 법원이 할 일을 대신해 BP로부터 약속을 받아내며 '법치'까지 과시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크기를 키워 우리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줄였다. 하이에크는 톱 다운 방식의 집산주의(collectivism)에 대한 반대가 이기주의나 자기중심주의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자유로운 현대사회는 '협력'으로 이뤄진다. 우리가 일이든 놀이든 적절하다고 생각할 때 다른 사람도 동참하도록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한 길이다. 하이에크는 우리에게 그러한 길을 제시했다.

하이에크는 비판가들이 묘사하는 것과 달리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 반드시 전체주의가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가능성과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비용을 경고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노예의 길'로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고 있든 하이에크는 틀림없이 방향을 바꾸라고 조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