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세종시 찬반기록' 정치자산 돼야

본회의 표결, 절차적 정당성 부여
훗날 책임정치 구현에 토대되길
대법원엔 법전과 저울을 손에 든 '정의의 여신'이 있다. 고전적 '법의 초상(肖像)'은 칼과 저울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칼과 공평한 저울인 것이다.

국회에는 상징물이 없다. 국회의원은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일 수 있다. 상징물로 '나침반'과 '펜'이 어떨까 싶다. 나침반은 '입법'을 의미한다. 입법은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항해지도'이기 때문이다. 서명을 위한 펜은 '책임정치'를 상징한다. '펜'이 무디지 않아야 '나침반'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여야 합의에 따라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이 표결 처리됨에 따라 세종시 처리를 둘러싸고 사분오열됐던 국론이 봉합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드러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지지성향을 감안할 때,수정안 부결은 진작에 예견됐던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지만,국회 본회의 표결에 이르는 과정과 그 내용이 역사에 기록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 의정(議政)은 폭력 국회로 얼룩져 왔다. 날치기 통과와 점거,농성이 끊이지 않은 것이 우리 국회였다.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표결을 통해 자신의 소신을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한 단계 공고화하는 획기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절차적 정당성은 강화됐지만,극복해야 할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국회 상임위에서 부결된 수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기 위해 국회법 87조를 동원한 것은 이명박 정권의 '아집'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임위의 책임범위를 넘는 국가 중대사에 대한 재론의 기회를 제도화한 구제조항이기 때문에 '오기의 정치'로 폄훼할 이유는 없다. 또한 표결내용을 기록하는 것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이라는 주장도 자가당착이다. "기록이 남는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국회의원을 거수기로 스스로 비하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부수정안이 폐기되면 수정안에 포함된 '+α'를 거둬들이는 것은 보복심리에 따른 비열한 처사라는 주장은 몰염치하기까지 하다.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정안의 '+α'는 원안대로의 추진을 믿었던 충청인들에 대한 계획 변경에 따른 '부가적 지출'인 것이다. 일종의 위로금 성격이 짙다.

하지만 원안으로 가면서 '+α'를 당연시하는 것은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균형발전에서 '균형'의 의미는 '형평성'이다. 지역 국민소득통계에 따르면 울산이 1위이고 충남이 2위이다. '+α'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민심수습 방안으로 제시한 세종시 수정안 포기가 역설적으로 그 단초가 됐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세종시에 대한 국민투표는 아니다. 그러한 논리가 맞다면,지방선거에서 진 과거 참여정부도 햇볕정책과 행정복합도시 건설을 포기했어야 맞다. 세종시라는 참여정부의 '대못'을 뽑겠다고 나서기엔 이명박 정권은 너무 유약했다. 당내 세종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정치력 부재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이제 세종시는 원안에 기초해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게 전개될 것이다. 원안을 토대로 인구 50만명의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를 건설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수도가 실패하면,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패배로 합리화되지 않는다. 표를 겨냥한 '행정수도이전' 공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해 화를 자초했다면,표심을 얻기 위한 사익추구행동을 국민과의 약속 이행으로 포장했다면,수정안에 대한 찬반 기록이 그 책임을 묻는 근거가 될 것이다. 실패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할 때 정치도 발전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