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부결] 정쟁 10개월…심의도 없이 표결한 '직무유기'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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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절차적 민주주의 실종지난 10개월간 정국을 뒤흔든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국회 본회의 부결로 일단락됐다. 수정안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9분에 불과했다. 그동안 진지한 토론 한번 없었던 국회의 표결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2분이었다.
감정 앞세운 찬반논쟁만 본회의 표결시간 단 2분
국론 사분오열…후유증 심각
22일 국토해양위와 29일 본회의는 '수정안 폐기' 표결을 위한 회의였다. 정부 수정안의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던 국회 스스로 절차민주주의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절차 민주주의' 실종
세종시 수정안 처리과정은 정치 실종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지난 1월 수정안이 제출됐지만 야당과 한나라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대로 상임위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었다. 지난 22일 국토해양위에 상정됐지만 격한 논쟁 끝에 수정안을 부결시킨 게 고작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박희태 국회의장의 주재로 오후 2시55분부터 찬반토론이 시작돼 4시2분 토론이 종료됐다. 곧바로 표결이 이뤄졌다. 심의절차도 생략하고 불과 1시간의 찬성 · 반대 토론만 진행한 채 표결로 서둘러 수정안을 폐기시킨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결론이 났지만 세종시 수정안 처리 과정을 보면 우리 국회가 스스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직무유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로지 표 논리를 앞세워 수정안을 정쟁화한 결과 여야 갈등은 물론 여여 갈등이 심화됐고 국론은 4분5열됐다. 충청도 민심도 둘로 갈라져 봉합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회 표결로 수정안은 폐기됐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정치권에서 '원안+α' 논쟁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정안에서 제시했던 싼값의 토지 제공,세제 혜택,과학비즈니스벨트 입주 등 각종 혜택이 사실상 백지화됐지만 정치권은 "일단 수정안을 폐기시키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수정안에 반대해 온 야당 의원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원안 시행 과정에서 기업을 입주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α'를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또 다른 갈등 속으로
표결에 이변은 없었다. 친이 대 야당과 친박의 대결구도가 그대로 나타났다. 찬성 105명,반대 164명,기권 6명이었다. 친이계는 수정안의 본회의 부의에 서명한 의원 수가 당초 66명으로 목표에 크게 못미쳤지만 실제 표결에는 대다수가 동참했다. 이탈표가 거의 없었다. 박 의장도 표결에 참석해 수정안에 찬성했다. 찬성표를 던진 의원 중에는 친박계 진영 최구식 의원도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반면 대부분의 친박계와 야당은 일제히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는 직접 반대토론에 나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날 표결 결과는 친이 · 친박 갈등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를 거듭 확인시켜줬다. 여권 안팎에선 뿌리 깊은 계파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봉합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치권에서는 '원안+α'를 놓고 여야,여여 갈등이 더 심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친이계 차명진 의원은 "이제 원안에 대한 심판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세균 · 이회창 대표와 박 전 대표가 지적한 약속 위반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참으로 아팠지만 역사의 심판은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라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준혁/김형호/박신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