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8) 주유(周瑜)‥손권의 오른팔, 유비 물리치고 '천하 三分' 깨려했지만…

소설 《삼국지》의 명장면인 적벽대전은 거의 1권 분량으로 그려질 만큼 흥미진진하다. 적벽대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최근 개봉된 어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2'에서는 분명 제갈량보다 주유가 주인공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체적인 스토리 전개가 소설보다는 정사에 입각한 설정으로 요약된다. 물론 적당한 소설적 요소도 가미돼 있어 제대로 된 전쟁 영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주유는 건장하고 용모가 빼어난 미남형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도 정통했다. 그는 자가 공근(公瑾)이며 여강(廬江) 사람이다. 종조부(從祖父)인 주경(周景)과 주경의 아들 주충(周忠)은 모두 한(漢)나라 태위를 지냈고,아버지 주이(周異)는 낙양현의 영(令)을 지냈으며 손견의 아들 손책과는 동갑으로 친구처럼 지냈다. 200년에 손책이 횡사하자 다시 손권의 오른팔이 되어 208년에 전부대독(前部大督)에 임명된다. 이 해 가을 조조가 형주를 손에 넣고 다시 수십만 대군으로 쳐들어 오니 모든 신하들이 투항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주유는 자신에게 정예 3만명만 주면 조조를 무찌를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린다. 여기에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제갈량이 손권에게 전쟁을 부추겨 촉 · 오 동맹이 맺어지고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설에 그려진 것과 달리 적벽대전의 주인공 주유는 부장 황개의 화공책 건의를 수용,정보(程普) 등 수군 수만명을 보내 촉나라와 힘을 합쳐 조조와 적벽에서 싸워 크게 깨뜨리고 군선을 불태워 조조에게 타격을 입히게 된다. 전략가인 주유는 이 전쟁에서 유비가 더 큰 이득을 볼 것으로 간파하고 유비를 경계대상 1호로 지목해 상소를 올리게 된다. 당시 제갈량의 치밀한 천하삼분 전략에 의해 손권은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에게 주어 사돈을 막 맺은 상태였고,친유비파인 노숙이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는 실책을 범했던 상황이었다.

유비가 천하의 효웅(梟雄)임을 간파한 주유는 위나라와 오나라의 양강(兩强) 구도 구축을 위해 심지어 사돈관계인 유비를 경구라는 곳에 가두자고까지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유비는 영웅다운 자태를 갖추고 있으며,관우와 장비 등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를 끼고 있으므로 틀림없이 오랫동안 몸을 굽혀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유비를 오군으로 옮겨 그를 위해 궁전을 성대하게 짓고 아름다운 여자와 진귀한 것을 많이 주어서 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관우와 장비 두 사람을 나누어 각기 한쪽에 배치하고 저 같은 사람이 그들을 지휘해 싸우게 한다면 대사가 안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국지 주유전》

그러나 오직 북방의 조조만을 경계한 손권은 영웅을 초빙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주유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유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적벽대전 후 조조의 좌절을 틈타 촉나라를 공격,촉을 제거하고 나서 다시 양양을 점거하고 북방의 조조마저 도모해 버리겠다는 야심을 드러내 결국 손권의 승낙을 받게 된다. 그런데 주유는 행장을 꾸려 파구를 지나다가 병으로 죽었다. 손권은 소복을 입고 애도해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주유의 영구가 오나라로 돌아오자 손권은 또 무호(蕪湖)로 가서 맞이하고 모든 비용을 다 대주었다. 그런 다음 명을 내려 "고인이 된 장군 주유의 집안에 있는 모든 손님에게는 부세와 요역을 물리지 말라"고 명했다.

경우의 수는 늘 존재한다. 만일 주유가 36세라는 나이에 병사하지 않고 유비 공격에 성공했다면 천하삼분 전략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촉한 정통론에 의해 제갈량이 주유를 무시하고,주유가 제갈량을 질시하는 장면은 정사 그 어디에도 없다. 역사와 소설,소설과 역사의 경계는 명확하지만 적어도 《삼국지》는 소설로든 역사로든 재미있는 명저 중 명저가 아닐까. 그 중심축에 삼국의 핵심 참모인 주유와 제갈량,순욱이 있는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