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나도 모르는 내 얘기

'사람을 비난함에 나쁜 점을 더하지 않으면 듣는 자들이 만족해 하지 않는다는 건 왕충(王充 · 27~100?)의 말이다. 오늘날 사람에 대해 논하는 자들 역시 말을 그만두는 건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준열하게 공격하는 것만 일삼으니 딱한 노릇이다. '<정조대왕 '일득록(日得錄)'>

왕충은 중국 후한(後漢) 시대 사상가니 사람 사는 세상이란 20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똑같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한층 더한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특정인을 비난 내지 험담하기 시작하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너도 나도 보태거나 퍼나르는 게 그것이다. 게다가 예전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인터넷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되는 만큼 무슨 말이든 일단 생겼다 하면 순식간에 그럴 듯한 스토리로 확대 재생산된다. 당사자가 알게 됐을 즈음엔 이미 거둬들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기 일쑤다.

헛소문이라고,사실과 다르다고 변명해봤자다. 오히려 비겁하다거나 꼼수를 쓴다는 식의 이야기를 지어내 당사자를 더 큰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대상이 연예인처럼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모른 척하고 있으면 한도 끝도 없이 퍼져나가 기정사실처럼 굳어버리고,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려 들면 자칫 이미지에 손상을 입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끓인다는 얘기다. 갑작스레 자살한 탤런트 박용하씨가 트위터 배경에 "사람들은 가끔씩 나도 잘 모르는 나에 대해 너무도 쉽게 이야기한다"는 가슴 아픈 말을 적어놨었다고 한다. 악플 때문에 미니홈피를 폐쇄했다는 박씨인 만큼 남의 말로 인한 상처와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박씨의 자살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위암 투병 중인 부친에 대한 걱정,사업 실패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는 추정만 나올 뿐이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애매모호함으로 표현한 걸 보면 일본에서의 인기에도 불구,불안하고 두려웠던 듯도 하다.

나도 모르는 내 얘기,헛소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살다 보면 언제 내가 그 대상이 될지 모른다. 남의 얘기라고 너무 쉽게 하지 말고 터무니없는 얘기를 듣더라도 당황하지 말 일이다. 헛소문보다 무서운 건 불안과 두려움이 빚는 과잉행동이나 실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m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