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전임자 임금, 단협에 끌어들이면 노사 모두 파국"

타임오프 대치 둘째날
2일 오후 2시 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공장.'노조 전임자 축소 반대''외주화 중단,고용 안정 보장하라''낮에 일하고 밤에 자자' 등의 글귀가 적힌 노조의 깃발들이 비바람 속에 나부끼고 있었다.

타임오프제 문제와 관련된 특별 단체교섭이 예정돼 있던 종합사무동 앞은 조용했다. 구호를 외치는 조합원도,요구 조건이 명시된 피켓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협상에 임해야 할 노조 측 대표자 전원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섭장에서 노조 대표들을 10분여간 기다린 서영종 기아차 사장과 이삼웅 경영지원본부 부사장,권수덕 노무지원사업부 상무 등 9명의 사측 교섭위원들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요즘처럼 기아차가 잘나갈 때가 없는데 파업이라니…." 교섭 위원들은 말끝을 흐리며 자리를 떴다.

◆노조, 별도교섭 거부

전임자 문제를 둘러싼 기아차 노사 간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측은 새 노동법을 준수하기 위해 204명의 노조 전임자를 지난 1일 전원 무급휴직 처리했고 노조는 후속 교섭 거부로 이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25일 쟁의찬반 투표를 가결시키는 등 파업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사측의 제의로 이날 열릴 계획이었던 특별 단체교섭은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다. 노조의 요구안 중 문제가 되고 있는 전임자 관련 사항만 따로 떼어서 논의하자는 의미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당초 사측은 노조와 전임자의 숫자를 몇 명으로 줄일지,어떤 방식으로 19명의 전임자 임금을 지급할지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기아차 노조는 이와 관련,"전임자 문제를 임금 및 단체협상의 틀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야 임단협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즉각 '합법적인' 파업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이날 "타임오프 관련 조항만 교섭하자는 것은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특별 단체교섭 참가를 거부했다. 대신 화성공장에서 파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집회를 가졌다.

◆사측"양보할 수 있는 사안 아니다"사측 교섭위원들은 협상 결렬 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단협과 함께 논의할 수 없는 사항"이라며 "법으로 명시된 문제를 단협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은 노사 모두가 파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섭위원은 "본의 아니게 경영계와 노동계가 대리전을 치르는 전선에서 '잔다르크'가 된 느낌"이라며 "산업계 전체가 기아차의 협상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만큼 원칙대로 협상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교섭위원은 "새 노동법의 취지는 노조가 재정 자립을 하라는 것"이라며 "새 노동법의 취지가 전임자의 숫자를 강제로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조합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현재 조합원 1인당 월 조합비가 2만7000원에 불과해 1만원가량만 인상해도 활기찬 노조활동이 가능하다"며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노조를 꾸려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기아차는 급여와 업무차량 등을 포함해 연간 133억6900만원을 노조에 지원해 왔다.

최근의 실적 호조가 협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한 교섭위원은 "기아차 점유율이 매달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지금은 열심히 차를 만들어 팔아야 할 때'라는 사측의 입장을 이해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며 "신차들에 대한 소비자의 호응이 전임자 문제 관련 협상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8월 이후 파업에 '무게'

지난해 기아차 노사는 '주간 2교대 근무' 사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협상 기간만 250일에 달했으며 연례행사인 파업도 곁들여졌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은 장기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가 타임오프 문제를 놓고 경영계 및 정부와 전면전을 선포한 만큼 회사 측의 설득만으로 상호 의견 접근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초 시작한 특근거부 투쟁을 지속하는 한편 오는 5일과 7일 각각 소하와 광주 공장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회를 열기로 한 상태다. 9일과 10일에는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1박2일간의 밤샘 시위를 예정해 놓고 있다. 파업 돌입 시점과 강도는 16일로 예정된 쟁의대책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다면 8월1일부터 시작되는 여름휴가 이후가 유력하다"며 "그 전까지는 파업을 위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주력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광명=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