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돈 원정에 몰래 태우기까지' 화장대란 다가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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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아닌 지역서 가욋돈 지불하는 '원정화장' 비율 70%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박승완씨(가명)는 지난달 29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4일장으로 치를 뻔했다. 서울시 화장장인 서울시립승화원의 예약이 이달 2일까지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가까운 성남, 수원 화장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결국 박승완씨는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춘천화장장으로 향했다.
국내 화장장측에 따르면 화장장내 지역고객과 다른 지역 고객의 비율은 3대 7 정도이다. 박승환씨의 경우 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화장'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을 찾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이야기다. 장례 관련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을 ‘원정화장’이라고 부른다. 2009년 한국갤럽이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원하는 장례 방법’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71.4%가 화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1년 62.2% 보다 9.2%P(포인트)가 상승한 수치다. 실제 서울 시민의 화장률은 70%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들의 장례 문화는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었지만 전국의 화장장수는 49개(행정안전부, 2009)로 수요를 맞추기가 버거운 실정이다.
◆ 230개 지자체 화장장은 겨우 49개,'님비'로 5곳 느는데 무려 20년
서울에서는 하루 평균 77구의 시신이 화장로에 들어가고 서울시의 유일한 화장장인 서울시립승화원은 하루 80구 정도를 화장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에 위치한 이 화장장은 경기도민과 함께 이용해야 해 항상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내 화장장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전국 지자체는 230개이지만 화장장은 모두 49개로 5개를 늘리는 데 무려 20년이 걸렸다. 이는 화장장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님비현상)와 이벤트성 인기 사업에만 치중하는 지역 공무원들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화장장 설립을 반대한 지역주민들은 결국 다른 지역으로 ‘원정화장’을 떠나야 하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초과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부담이 된다.
<한경닷컴 조사. 지역 화장장 가격비교표 (단위 만원)>
국내 대부분의 화장장은 지역주민과 타지역주민 간에 차등을 둔다. 서울시립승화원의 경우 지역주민은 9만원에 화장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타지역주민은 30만원을 내야 한다. 또한 성남화장장와 수원화장장은 각각 지역민에게 5만원, 10만원을 받지만 타지역민에겐 100만원을 책정한다. 여기에 ‘원정화장’으로 인한 운구 비용까지 포함되면 서민들이 부담해야 할 장례비용은 더욱 커진다.
성남화장장 관계자는 이 같은 차등 비용에 대해 “우리 지역 주민들이 자리가 없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돈을 더 주고 타지역으로 가도 화장장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려 116개의 지자체가 다른 지역의 화장장을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을 잘 아는 상조회사들이 미리 가예약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상조회사와 공모해 서울시립승화원의 예약을 독점한 장례업자들이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항간엔 ‘상조 가입 안 하면 화장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 유골 가스통에다 몰래 태우다 화재 발생도
국내 화장장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많이, 더 빨리’ 수요를 맞추기 위해 불법화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족한 화장로 대신 가스통에 유골을 태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 장사법에는 정식 화장장 외에서 화장시키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안우환 교수(을지대학 장례지도학과)는 “불법화장은 주로 인근 야산에서 일어나는데 유골을 가스통에 넣어 숯, 짚, 프로판가스 등으로 불을 붙인다”며 “화장장이 부족한 수도권에서 특히 빈번하다”고 밝혔다.
실제 2007년에는 묘지를 불법으로 이장하려다 임야 1200평과 소나무 350그루를 태운 사람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불법 화장은 장사법 위반에 산불 위험까지 있지만 한 화장업체 관계자는 “화장장만 넉넉하면 이런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자리를 잡기 위해 업체에 웃돈을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화장업체들의 이러한 불법화장과 관행은 공공연히 퍼진 사실이지만 개선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나서서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정서상 대다수가 웃돈을 주더라도 조상을 편히 모시려 하고 장례 치르는 일에 큰 소리 내는 것을 불편해한다.
서울시립승화장에서 기자와 만난 김동현씨(70)는 “무사히 고인을 보낼 수 있다면 돈 이상의 것도 줄 수 있다. 화장 때문에 화가 나도 다시 고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얼굴 붉히기 싫다”고 말했다.
◆ 2012년 윤년맞아 ‘화장대란’ 불 보듯…"광역화장장 설립 시급"
지금도 화장장이 모자라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만 2012년에는 이른바 ‘화장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태호 정책연구실장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윤년에 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때 화장 건수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전에는 화장장을 설립하려는 지자체장들이 종종 자문을 구했지만 최근엔 문의조차 끊겼다”며 “이는 2009, 2010년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윤년에 총선 · 대선 등 굵직한 선거가 있는 2012년은 화장 수요급증, 화장장 공급부족으로 인한 ‘화장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 ‘시와 군이 힘을 합쳐 화장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가장 잘 시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보건국 통계 ‘2008년 말 일본 전국 화장장 수’>
일본 후생노동성의 2008년 말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시·정(町)·촌 수는 1795개이고, 화장장 수는 모두 1542개이다. 주로 자지단체가 단독으로 설치하거나 시·정(町)·촌이 조합형태로 설립한 것이다. 2개 이상의 화장장을 가진 도시가 다수인 점으로 볼 때 최소 600개 이상의 시·정·촌이 광역화장장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선 해당 지역주민과 타지역주민의 차등도 크지 않다. 대부분이 1만엔~2만엔(약 13만9000원~27만8000원) 사이다. 게다가 요코하마와 같은 지자체는 지역 주민이 불가피하게 타지역 화장장을 이용해 비용을 더 지불하면 그 차액을 환불해 준다.
국민들의 장례 문화는 이미 화장으로 바뀌었는데 화장장이 심각하게 모자라는 ‘붉은 여왕의 법칙(환경이 빠르게 변해 사람들의 진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론)’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과 같이 광역화장장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하다.화장장 부족의 심각성을 홍보하고 있는 박태호 정책연구실장은 “도시화, 핵가족화로 화장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시와 도가 일본의 시·정·촌처럼 조합해 대형 화장장을 설립하면 공급부족과 타지역민들의 차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인턴기자 jiyun@hankyung.com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박승완씨(가명)는 지난달 29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4일장으로 치를 뻔했다. 서울시 화장장인 서울시립승화원의 예약이 이달 2일까지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가까운 성남, 수원 화장장도 상황은 마찬가지. 결국 박승완씨는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춘천화장장으로 향했다.
국내 화장장측에 따르면 화장장내 지역고객과 다른 지역 고객의 비율은 3대 7 정도이다. 박승환씨의 경우 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화장'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을 찾는 이들이 대다수라는 이야기다. 장례 관련 업계는 이 같은 현상을 ‘원정화장’이라고 부른다. 2009년 한국갤럽이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원하는 장례 방법’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71.4%가 화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1년 62.2% 보다 9.2%P(포인트)가 상승한 수치다. 실제 서울 시민의 화장률은 70%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들의 장례 문화는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었지만 전국의 화장장수는 49개(행정안전부, 2009)로 수요를 맞추기가 버거운 실정이다.
◆ 230개 지자체 화장장은 겨우 49개,'님비'로 5곳 느는데 무려 20년
서울에서는 하루 평균 77구의 시신이 화장로에 들어가고 서울시의 유일한 화장장인 서울시립승화원은 하루 80구 정도를 화장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에 위치한 이 화장장은 경기도민과 함께 이용해야 해 항상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내 화장장 부족 문제는 심각하다. 전국 지자체는 230개이지만 화장장은 모두 49개로 5개를 늘리는 데 무려 20년이 걸렸다. 이는 화장장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님비현상)와 이벤트성 인기 사업에만 치중하는 지역 공무원들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화장장 설립을 반대한 지역주민들은 결국 다른 지역으로 ‘원정화장’을 떠나야 하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초과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부담이 된다.
지역 화장장 | 연령 | 지역민 | 타지역민 |
서울시립승화원 | 만 13세 이상 | 9 | 30 |
수원시 연화장 | 만 15세 이상 | 10 | 100 |
성남 영생사무소 | 만 15세 이상 | 5 | 100 |
인천가족공원 화장시설 | 만 15세 이상 | 6 | 100 |
부산 영락공원 | 만 14세 이상 | 12 | 48 |
대구 명복공원 | 만 15세 이상 | 9 | 45 |
울산시 공설화장시설 | 만 15세 이상 | 5 | 40 |
강원 춘천시립화장시설 | 만 15세 이상 | 7 | 30 |
충북 충주시 화장시설 | 만 15세 이상 | 18 | 36 |
전북 전주시공설화장시설 | 만 15세 이상 | 5 | 30 |
경남 진해화장장 | 만 15세 이상 | 4 | 16 |
국내 대부분의 화장장은 지역주민과 타지역주민 간에 차등을 둔다. 서울시립승화원의 경우 지역주민은 9만원에 화장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타지역주민은 30만원을 내야 한다. 또한 성남화장장와 수원화장장은 각각 지역민에게 5만원, 10만원을 받지만 타지역민에겐 100만원을 책정한다. 여기에 ‘원정화장’으로 인한 운구 비용까지 포함되면 서민들이 부담해야 할 장례비용은 더욱 커진다.
성남화장장 관계자는 이 같은 차등 비용에 대해 “우리 지역 주민들이 자리가 없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돈을 더 주고 타지역으로 가도 화장장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려 116개의 지자체가 다른 지역의 화장장을 사용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을 잘 아는 상조회사들이 미리 가예약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상조회사와 공모해 서울시립승화원의 예약을 독점한 장례업자들이 붙잡히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항간엔 ‘상조 가입 안 하면 화장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 유골 가스통에다 몰래 태우다 화재 발생도
국내 화장장의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많이, 더 빨리’ 수요를 맞추기 위해 불법화장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족한 화장로 대신 가스통에 유골을 태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행 장사법에는 정식 화장장 외에서 화장시키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안우환 교수(을지대학 장례지도학과)는 “불법화장은 주로 인근 야산에서 일어나는데 유골을 가스통에 넣어 숯, 짚, 프로판가스 등으로 불을 붙인다”며 “화장장이 부족한 수도권에서 특히 빈번하다”고 밝혔다.
실제 2007년에는 묘지를 불법으로 이장하려다 임야 1200평과 소나무 350그루를 태운 사람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불법 화장은 장사법 위반에 산불 위험까지 있지만 한 화장업체 관계자는 “화장장만 넉넉하면 이런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자리를 잡기 위해 업체에 웃돈을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화장업체들의 이러한 불법화장과 관행은 공공연히 퍼진 사실이지만 개선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나서서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정서상 대다수가 웃돈을 주더라도 조상을 편히 모시려 하고 장례 치르는 일에 큰 소리 내는 것을 불편해한다.
서울시립승화장에서 기자와 만난 김동현씨(70)는 “무사히 고인을 보낼 수 있다면 돈 이상의 것도 줄 수 있다. 화장 때문에 화가 나도 다시 고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얼굴 붉히기 싫다”고 말했다.
◆ 2012년 윤년맞아 ‘화장대란’ 불 보듯…"광역화장장 설립 시급"
지금도 화장장이 모자라 공급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만 2012년에는 이른바 ‘화장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박태호 정책연구실장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윤년에 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때 화장 건수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전에는 화장장을 설립하려는 지자체장들이 종종 자문을 구했지만 최근엔 문의조차 끊겼다”며 “이는 2009, 2010년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로 미루어보면 윤년에 총선 · 대선 등 굵직한 선거가 있는 2012년은 화장 수요급증, 화장장 공급부족으로 인한 ‘화장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를 막기 위해 ‘시와 군이 힘을 합쳐 화장장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가장 잘 시행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총계 | 지방공공단체(공영) | 사찰 | 주식회사 | 재단 | 기타 | ||
(개소) | 소계 | 직영 | 조합운영 | ||||
1542 | 1504 | 1231 | 273 | 5 | 12 | 14 | 8 |
일본 후생노동성의 2008년 말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시·정(町)·촌 수는 1795개이고, 화장장 수는 모두 1542개이다. 주로 자지단체가 단독으로 설치하거나 시·정(町)·촌이 조합형태로 설립한 것이다. 2개 이상의 화장장을 가진 도시가 다수인 점으로 볼 때 최소 600개 이상의 시·정·촌이 광역화장장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선 해당 지역주민과 타지역주민의 차등도 크지 않다. 대부분이 1만엔~2만엔(약 13만9000원~27만8000원) 사이다. 게다가 요코하마와 같은 지자체는 지역 주민이 불가피하게 타지역 화장장을 이용해 비용을 더 지불하면 그 차액을 환불해 준다.
국민들의 장례 문화는 이미 화장으로 바뀌었는데 화장장이 심각하게 모자라는 ‘붉은 여왕의 법칙(환경이 빠르게 변해 사람들의 진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론)’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과 같이 광역화장장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하다.화장장 부족의 심각성을 홍보하고 있는 박태호 정책연구실장은 “도시화, 핵가족화로 화장 수요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시와 도가 일본의 시·정·촌처럼 조합해 대형 화장장을 설립하면 공급부족과 타지역민들의 차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인턴기자 ji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