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플라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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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가졌다는 내용을 다뤘다. 그것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비밀 코드로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다. 다빈치는 예수의 비밀을 지켜 온 시온 수도회의 멤버였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후세에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으로,종교계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다빈치를 연구하는 사브리나 스포르자 갈리치아라는 학자는 한술 더 뜬다. '최후의 만찬' 속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반원 모양 창문에 수학과 점성학적 의미가 담긴 암호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갈라치아는 그 암호를 풀어 인류가 4006년 11월1일 대홍수로 종말을 맞는다는 예측까지 했다. 2000년 후의 일이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는 "다빈치가 종교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림에 이 같은 코드를 숨겨놓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암호가 존재한다는 발상은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1달러짜리 미국 지폐 뒷면의 13층 피라미드 위에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상징하는 그림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의미하는 문구가 있다는 설(說)만 해도 그렇다. 미국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영향으로 그런 도안이 나왔다는 해석이다. 일부에선 동양의 사주팔자를 사람의 출생정보가 담긴 비밀코드로 본다.
비밀코드 논란이 이번엔 철학자 플라톤으로 옮겨 붙을 모양이다. 고전학 연구자인 영국 맨체스터대의 제이 케네디 교수가 플라톤 저서에 우주의 비밀과 관련된 메시지가 담겼다는 논문을 권위있는 학술지 '아페리온'에 발표했다. 요지는 플라톤 저서에 핵심 구절과 단어,주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며,이 주기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본 피타고라스 학파가 내세웠던 12음계 간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수학과 논리적 패턴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주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밀 코드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만큼 힘겹기 때문일 게다. 요즘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큰 일'을 앞두거나 뭔가 잘 안풀리면 이런저런 점(占)에 의존해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미래를 훤히 꿰고 있다 해도 문제는 있다. 도대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다빈치를 연구하는 사브리나 스포르자 갈리치아라는 학자는 한술 더 뜬다. '최후의 만찬' 속 예수의 머리 위에 있는 반원 모양 창문에 수학과 점성학적 의미가 담긴 암호가 존재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갈라치아는 그 암호를 풀어 인류가 4006년 11월1일 대홍수로 종말을 맞는다는 예측까지 했다. 2000년 후의 일이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는 "다빈치가 종교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림에 이 같은 코드를 숨겨놓았다"고 강조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암호가 존재한다는 발상은 호기심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1달러짜리 미국 지폐 뒷면의 13층 피라미드 위에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상징하는 그림과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의미하는 문구가 있다는 설(說)만 해도 그렇다. 미국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영향으로 그런 도안이 나왔다는 해석이다. 일부에선 동양의 사주팔자를 사람의 출생정보가 담긴 비밀코드로 본다.
비밀코드 논란이 이번엔 철학자 플라톤으로 옮겨 붙을 모양이다. 고전학 연구자인 영국 맨체스터대의 제이 케네디 교수가 플라톤 저서에 우주의 비밀과 관련된 메시지가 담겼다는 논문을 권위있는 학술지 '아페리온'에 발표했다. 요지는 플라톤 저서에 핵심 구절과 단어,주제가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며,이 주기는 만물의 근원을 수(數)로 본 피타고라스 학파가 내세웠던 12음계 간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우주를 지배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수학과 논리적 패턴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주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밀 코드에 관심이 높은 이유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만큼 힘겹기 때문일 게다. 요즘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큰 일'을 앞두거나 뭔가 잘 안풀리면 이런저런 점(占)에 의존해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미래를 훤히 꿰고 있다 해도 문제는 있다. 도대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아닌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