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없는 사람들이 봄꿈처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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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씨 시집 '봄꿈을 꾸며' 출간단순하고 애잔하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따뜻하다. 김종해 시인이 고희(古稀)를 맞아 9년 만에 새 시집 《봄꿈을 꾸며》(문학세계사 펴냄)를 내놓았다.
'튿어진 단추를 달기 위해/ 고희를 넘긴 아내가/ 바늘귀에 실을 꿰어 달라고 한다/ 예닐곱 살 때 어머니의 바늘귀에/ 직방으로 꿰었던 그 실이/ 오늘 내 손끝을 달군다. (중략)/ 바늘귀 바깥에서 헛짚는 시간/ 바늘귀 하나 꿰지 못하는 나는/ 무엇을 잃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바늘귀가 내 앞에 절벽처럼 서 있다. '('바늘귀' 부분)한평생 감았던 삶의 실타래를 찬찬히 풀어내는 듯하다. 시인은 인왕산에서 백두밀영까지 자연을 따라 삶의 섭리를 더듬고 어린시절 어머니와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특히 이별을 화두로 삼은 시편들이 눈길은 끈다. '이승을 떠난 사람들과 이승을 떠나려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북한산을 보며')인 광화문의 애도행렬이나 근조 화환을 달고 강변북로를 달리는 리무진('길 위에서 문상')과 마주친 소회,지난 몇 년간 이별한 문인 동료들과 용접공이었던 형에 대한 슬픔이 곳곳에 배어있다.
'망자를 생각하면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봄날이 왔으나 꽃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내가 망자와 같이 있었거나/ 망자와 일체가 되어 지냈음이라/ 봄날,꽃이 꽃으로 보이려면/ 나를 붙들고 있는 망자 속에서/ 내가 나와야 함이니/ 꽃이여,가엾구나/ 오늘은 나 말고/ 다른 이를 위해 어여삐 피었거라/ 이 봄날 내 눈치 보지 말고/ 지천으로 피었거라.'('망자(亡者)를 그리며' 전문)그러나 《봄꿈을 꾸며》는 과거를 담고 있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이다. 시인이 꿈꾸는 '봄'은 단순히 회상의 대상이나 지나가버린 인생의 황금기만이 아니라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꿈이다. 어쩌면 '현재'는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숨죽인 늦겨울의 끝자락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말이지요,저의 임종 때,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봄꿈을 꾸며' 부문)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