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슈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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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은 성 밖 늪지대에 사는 못생기고 힘센 초록색 괴물이다. 다들 무서워하면서 접근하지 않는 덕에 어느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던 그에게 어느 날 파콰드 영주에게 쫓겨난 백설공주,신데렐라,빗자루 마녀,피터팬,피노키오 등 동화 주인공들이 몰려온다.
조용하던 일상이 마구 흐트러진 걸 견디다 못한 슈렉은 파콰드와 담판,성공하면 그들을 도로 데려간다는 조건 아래 용의 성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간다.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와 함께 구출한 공주는 낮엔 예쁘지만 밤이 되면 못생긴 괴물로 변하는 마법에 걸려 있다. 해결책은 한 가지,진실한 사랑의 키스뿐이다. 사랑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밀고 당기던 끝에 이뤄진 키스로 마법에서 풀려난 공주는 뜻밖에 아름다운 낮의 모습이 아닌 밤의 모습으로 변한다. 2001년 등장한 만화영화 '슈렉'은 이렇게 기존 동화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왕자가 아닌 괴물이 구하러 가는 것도 낯선데 나선 이유 또한 공주와 왕국 차지가 아닌 홀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자유 회복이다. 공주는 다소곳하기는커녕 뱀과 두꺼비로 풍선을 만드는 발차기 대가다.
기존 동화가 확대재생산해내던,여성은 수동적이고 보호받는 존재란 인식과 외모지상주의는 물론 권력지향적 사고까지 한방에 부숴버린 셈이다. 게다가 당나귀와 용을 결합시킴으로써 다민족 사회에 적지않은 메시지를 던졌다. '슈렉'시리즈 종결편'슈렉 포에버'는 세 쌍둥이 아버지가 된 슈렉의 일탈을 다룬다. 슈렉은 제멋대로인 아이들과 아내의 잔소리,이것저것 요구하는 이웃에 시달리는 나날이 지겨운 나머지 제멋대로 살던 시절이 그립기 짝이 없다.
답답한 일상에서 하루만이라도 놓여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은 '겁나먼 왕국'을 차지하려는 악당 럼펠과 거래하게 만든다. 일탈의 대가는 혹독하다. 가족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슈렉은 온갖 고난 끝에 겨우 원상태로 되돌린다.
슈렉은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모습일지 모른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세계를 갈망하지만 사랑과 가족의 볼모가 돼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니꼬운 것도 참고 싫어도 웃고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해내려 애쓰는.10년 동안 온갖 모험을 무릅쓴 슈렉이 소시민으로 정착하는 걸 보는 마음이 왠지 서글픈 건 혼자만의 느낌인가.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조용하던 일상이 마구 흐트러진 걸 견디다 못한 슈렉은 파콰드와 담판,성공하면 그들을 도로 데려간다는 조건 아래 용의 성에 갇힌 피오나 공주를 구하러 간다. 수다쟁이 당나귀 동키와 함께 구출한 공주는 낮엔 예쁘지만 밤이 되면 못생긴 괴물로 변하는 마법에 걸려 있다. 해결책은 한 가지,진실한 사랑의 키스뿐이다. 사랑이란 게 언제나 그렇듯 밀고 당기던 끝에 이뤄진 키스로 마법에서 풀려난 공주는 뜻밖에 아름다운 낮의 모습이 아닌 밤의 모습으로 변한다. 2001년 등장한 만화영화 '슈렉'은 이렇게 기존 동화의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왕자가 아닌 괴물이 구하러 가는 것도 낯선데 나선 이유 또한 공주와 왕국 차지가 아닌 홀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자유 회복이다. 공주는 다소곳하기는커녕 뱀과 두꺼비로 풍선을 만드는 발차기 대가다.
기존 동화가 확대재생산해내던,여성은 수동적이고 보호받는 존재란 인식과 외모지상주의는 물론 권력지향적 사고까지 한방에 부숴버린 셈이다. 게다가 당나귀와 용을 결합시킴으로써 다민족 사회에 적지않은 메시지를 던졌다. '슈렉'시리즈 종결편'슈렉 포에버'는 세 쌍둥이 아버지가 된 슈렉의 일탈을 다룬다. 슈렉은 제멋대로인 아이들과 아내의 잔소리,이것저것 요구하는 이웃에 시달리는 나날이 지겨운 나머지 제멋대로 살던 시절이 그립기 짝이 없다.
답답한 일상에서 하루만이라도 놓여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은 '겁나먼 왕국'을 차지하려는 악당 럼펠과 거래하게 만든다. 일탈의 대가는 혹독하다. 가족은 물론 목숨까지 잃을 뻔했던 슈렉은 온갖 고난 끝에 겨우 원상태로 되돌린다.
슈렉은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모습일지 모른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세계를 갈망하지만 사랑과 가족의 볼모가 돼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니꼬운 것도 참고 싫어도 웃고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해내려 애쓰는.10년 동안 온갖 모험을 무릅쓴 슈렉이 소시민으로 정착하는 걸 보는 마음이 왠지 서글픈 건 혼자만의 느낌인가.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