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Trend] 경영노트‥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품질'…'가전명품' 밀레의 성공 키워드

김근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 수석연구원
1899년 독일 동북부의 작은 시골마을 헤르츠블록에서 두 명의 청년이 버터크림 분리기를 만들어 파는 작은 회사를 세웠다. 종업원 11명으로 시작한 이 중소기업은 불과 5년 뒤 세계 최초로 세탁기를 만들었다. 1929년에는 세계 최초의 식기세척기도 개발했다. 111년이 지난 지금,이 회사는 매출 4조5000억원,종업원 1만6000여명을 거느린 프리미엄 가전업체로 성장했다. 2007년에는 국제 슈퍼브랜드 기구의 전문가들이 9800여개 브랜드 중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닌 브랜드에 수여하는 '슈퍼브랜드' 상을 받기도 했다. 한 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성장하며 '가전업계의 루이비통'으로 인정받는 밀레의 비결은 무엇일까.

밀레는 세계에서 가장 고가에 팔리는 가전 브랜드 중 하나다. 세탁기 냉장고 식기세척기 등이 보통 국내 일반 제품의 2~3배 값에 팔린다. 밀레가 이처럼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창업 당시부터 밀레의 경영 모토였던 '임머 베서(Immer Besser)',즉 'forever better' 정신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밀레는 제품 출시 전부터 엄격한 품질테스트를 거치기로 유명하다. 예컨대 청소기를 8m 앞 벽에 집어던지는 충돌테스트,360도 회전하는 특수기계 안에서 1000번 이상 떨어뜨리는 낙하테스트,1000시간 이상 모터를 쉬지 않고 가동시키는 과열테스트 등이다. 이렇게 축적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밀레는 모든 생산품을 20년간 보증한다. 밀레는 '독일 내 생산(Made in Germany)' 원칙을 고집한다. 10개 공장 중 9개는 독일에 있다. 남은 하나도 인접한 오스트리아에 뒀다. 품질유지를 위해서다. 매출액의 5%를 매년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밀레의 명성을 만든 것은 장인들이다. 임직원 중 절반 이상인 1만여명이 25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이다. 40년 넘은 사람도 적잖다. 3~4대째 밀레에서 일하는 가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직률은 1% 대에 불과하다. 이들은 '밀레이안(Mieleian)'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밀레이안이 되기 위한 과정은 무엇일까. 밀레는 생산기술자는 현지와 지역사회에서,R&D 전문 인력은 전 세계에서 각각 선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특히 생산기술자는 의무교육을 마친 만 18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현장기술교육을 실시한 뒤 까다로운 선발과정을 거쳐 정규직원으로 채용한다. 밀레이안이 된 뒤엔 오랜 경력과 기술력을 갖춘 교육 책임자들이 함께하며 1 대 1 교육을 실시한다. 외부 대학을 찾아다니지 않고도 고위직 승진에 필요한 기술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사내교육이 잘 갖춰져 있다. 밀레 경쟁력의 밑바탕에는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있다. 창업 이래 111년간 파업이나 노동쟁의 같은 갈등을 겪은 적은 거의 없다. 체계적인 교육시스템과 인력관리,탄력적 근무형태,다양한 복지제도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큰 힘은 '계층의식 없는 가족주의 문화'다. 경영진과 생산기술자 연구개발자 등 각 분야들의 임직원들이 하는 일은 다르지만 계층은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내식당에서 경영진이 직원들과 식사하며 건의사항을 듣고 어울리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권위의식 없는 경영진과 직원들 간에 쌓인 오랜 세월의 신뢰가 무분규의 신화를 만든 것이다.

오늘의 밀레를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 제품을 최고로 만드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에 집중해서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아내고,이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기 때문이 아닐까. lune.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