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라이벌 열전①]"증권 시황방송 우리가 책임진다"…10년' 내공' 현대증권 vs '향기'를 담는 삼성증권

대한민국 금융의 허브 서울 여의도에서는 수많은 고수들이 맹활약 중이다. 증권사부터 은행, 기금, 자문사, 선물회사 등 금융업계를 총 망라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하루하루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냉철한 사고가 요구되는 금융가에서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는 최고 고수부터 여의도의 속살을 드러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사람 사는 얘기까지 생생한 라이벌 스토리로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첫 스타트로 KBS와 MBC 양대 공중파에서 증권사 이름을 걸고 주식시황 방송의 자웅을 겨루고 있는 현대증권과 삼성증권의 맞수 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홍승연 현대증권 팀장 "10년 전통의 시황방송 명가, 새로운 역사를 씁니다"

똑 소리나는 증권 전문가가 미모와 세련된 목소리까지 소유하고 있다면 신(神)은 불공평한 것일까?

그 주인공은 현대증권 홍보실 홍승연 커뮤니케이션팀장(35·사진). 주식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공중파 텔레비젼과 라디오를 통해 홍 팀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대증권은 이익치 전 회장 시절인 2000년부터 사내 방송팀을 만들어 운용해 왔고, 이 방송팀은 KBS 등 13개 매체에 시황 방송을 송출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4월에는 HD급 기자재로 방송시설을 업그레이드했다. 고화질의 영상을 위성을 통해 전국 현대증권 객장에 실시간으로 전송하고 KBS와 YTN 라디오 등 제도권 방송사에도 내보내고 있다.

현대증권 방송팀을 이끌고 있는 홍 팀장은 10년차 베테랑 아나운서다. 다섯살 배기 아들을 가진 주부이기도 한 홍 팀장은 세명의 후배 아나운서의 롤모델이기도하다.

"1분30초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짧은 시간에 공중파에 나가 그날의 주식시장 시황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10년을 해오고 있는데도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아요"홍 팀장은 퇴근해서도 그날의 주식시황과 내일 전개될 시장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이 거래를 멈추고 마감 시황까지 방송을 탄 이후에도 머리속이 복잡합니다. 투자자들에게 쉽고 간명하면서도 정확한 증권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이 녹록치 않아요. 그래서 좋은 아내,좋은 엄마는 못되나 봅니다"

홍 팀장은 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투자운용인력(FP) 자격증을 소유한 탄탄한 증권 전문가다. 목소리만 좋은 아나운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2000년 현대증권에 입사해 1년6개월 간 영업팀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아나운서로 자의반 타의반 착출됐다.


현대증권 아나운서들은 리서치센터의 투자전략부 회의에도 참여하고, 종목이나 시황 회의에도 배석한다. 종목과 업황, 투자전략의 최고 전문가인 애널리스트들과도 수시로 의견을 교환한다.

"증권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날의 주식시황을 정확히 꿰뚫는 혜안을 소유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방송 아나운서들도 리서치센터의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최근 주식시장의 흐름을 몸에 익히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생물과 같은 주식시장의 속성 때문에 초보 아나운서 시절 실수도 많았다.

"1분30초짜리 KBS 시황방송을 해야 하는데 그날 시황이 화장을 고치고 오는 사이 불과 몇 분 사이에 확 바뀐겁니다.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았죠. 베테랑이라면 임기웅변을 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초보라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납니다"

하지만 이제는 방송이 끝나면 가슴 한구석이 시원해질 정도로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오전 9시대 시황 방송은 주부들이 주 시청자라는 점을 감안해 전문용어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 사용한다. YTN 등 전문성을 지닌 방송에 출연할때는 전문가들의 안목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후발주자인 삼성증권의 반격에도 나름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증권이 MBC에 시황방송을 내보내고 있어 모니터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아나운서가 밀도있게 진행하는 모습이 강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단조로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 될 수 있겠죠. 어쨌든 10년 전통의 현대증권의 아성을 아직은 넘볼 수준이 아닙니다"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한 참 앞서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다.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황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도 숨기지 않았다.

홍 팀장은 1분 안팎의 짧은 시간으로는 시황과 투자전략까지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포맷을 달리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김민정 삼성증권 아나운서 "하루에 방송만 여섯번…PB 지원까지"

"오디오 체크할게요. 스탠바이 해주세요. 5초 후에 시작합니다. 5, 4, 3, 2, 1."

"코스피가 주간 기준으로 6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오늘 코스피는 전날보다..."

태평로 삼성증권 본사 내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바쁘게 녹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블루스크린 앞에서 능숙하게 증시 시황을 전달하고 있는 사람은 김민정 삼성증권 아나운서(28·사진)다.

MBC TV 뉴스에서 증시 시황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김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공중파 TV에서 하루 네번 증시 시황을 전달하는데다, 라디오와 삼성증권 사내방송까지 담당한다.

"아침 6시 반에 출근해서 전날 뉴욕시황을 먼저 정리하고요. 7시 반에는 리서치센터 모닝미팅 내용을 정리해서 사내방송용으로 녹음하고, 10시와 12시에는 MBC TV 뉴스 녹화가 있어요. 오후가 되면 2시엔 MBC 라디오, 5시, 6시 반에 또 TV 녹화가 있네요."

방송에 나가는 것은 1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장중 지수 시황과 특징주, 환율 등을 수시로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일이다. 특히 북한 이슈나 글로벌 증시 급락 등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긴급편성용 방송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삼성증권은 최근 태평로로 이사하면서 스튜디오에 HD 카메라와 편집기, 송출기기 등의 시스템을 새로 마련했다. 블루스크린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기상예보 스타일을 적용하는 등 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김민정 아나운서는 삼성증권 내 유일한 아나운서다. 방송에 나가는 모든 원고를 직접 쓰는 것은 물론, 투자정보팀에 소속돼 전국 지점 PB들에게 시황 정보를 전달하는 일도 한다.

김 아나운서는 2008년 삼성증권에 입사하기 전에는 춘천 MBC에서 라디오 DJ와 대검찰청 사내방송 아나운서, 평화방송 MC 등을 맡았었다. 그 동안은 아나운서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기는 했어도 증권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삼성증권 입사 초기에는 고생을 많이 했어요. 증권사 리포트와 신문기사를 찾아보고 리서치센터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으면서 꾸준히 공부했죠."

특히 김 아나운서가 일을 막 시작했던 2008년 당시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요동치던 때였다. 장중 변동성이 너무 커서 하루에도 몇번씩 원고를 고쳐쓰기 일쑤였다고.

그는 "장 마감 직전에 원고를 써서 준비해놨는데 막판에 코스피가 30포인트 넘게 빠진다던가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며 "익숙하지 않을 때 그런 장을 겪어서 담금질을 독톡히 했다"고 말했다.

김 아나운서의 방송은 삼성증권 내 PB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 그의 사내방송을 듣고 기운을 얻었다는 감사의 인사도 종종 듣는다. 장이 빠지면 지점에서 영업하는 직원들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클로징 멘트로 조금이나마 기운을 복돋아주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드름은 거꾸로 매달려서도 제 키를 키워간다. '눈물은 힘이 세다'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증시 상황이 힘들지만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코스피가 많이 빠졌을 때 김 아나운서가 방송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KBS에서 증시 시황을 담당하고 있는 홍승연 현대증권 아나운서에 대해서는 "라이벌이라고 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저보다 훨씬 경력이 긴 분이라서 모니터링도 많이 합니다. 단순한 시황 전달에서 벗어나 전문가적인 시각도 곁들이시기 때문에 저도 배우고 있죠."증권 시황 관련 아나운서를 하면서 힘든 일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협찬이 거의 없어서 방송 때마다 의상을 고르는 게 제일 힘들다"며 웃었다. "의상 협찬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바램도 살짝 덧붙였다.

한경닷컴 변관열·김다운 기자 b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