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버 DNA 살아있다…e북으로 명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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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대표의 고민과 도전"한번 도망가기 시작하면 계속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도전을 하면 도망갈 길은 없다. "
스마트폰 돌풍에 매출 주춤…디자인 강점 살린 e북 출시
9월께 가격 낮춰 中 공략
지난 5일 서울 방배동에 있는 아이리버 본사.이재우 아이리버 대표(53 · 사진)의 목소리엔 위기감이 묻어났다. 2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 속엔 종종 '애플''아이패드''스마트폰''위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대표는 토종 사모펀드 1호로 불리는 보고펀드의 공동대표로 지난해 12월 적자의 늪에 빠져있는 아이리버에 '구원투수' 자격으로 왔다. 2007년 아이리버에 600억원을 투자한 보고펀드는 아이리버의 최대주주다. ◆아! 스티브 잡스
이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지독한(?) 인연이었다.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얘기다. 아이리버는 2002년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MP3 플레이어로 최강의 자리에 오른 독보적인 존재였다. 한발 빠른 제품,디자인과 감성.시장에선 아이리버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아이팟'을 내놓았지만 아이리버는 MP3 제품을 늘리면 대응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세를 늘려갔다.
그것도 잠시.2007년 잡스가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자인과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한 아이폰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아이리버의 매출은 눈에 띄게 꺾였다. 위기였다. 보고펀드를 운용하던 이 대표는 당시 자금난에 처한 아이리버의 '브랜드'를 봤다. 족히 500억원은 능가하는 가치가 있단 생각에 600억원을 투자했다.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선 이후에도 아이리버의 브랜드를 믿었다. 아이리버는 동영상을 볼 수 있는 MP4와 전자사전,내비게이션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지만 적자는 계속됐다. 지난해 4분기 영업적자가 115억원에 달하자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최대주주인 보고펀드는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며 승부수를 날리기로 했다. 이 대표는 "시장의 패러다임이 애플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으로 바뀔 줄 알았더라면 MP3 제품군을 늘리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제 더이상 도망가는 일은 없다"고 못박았다. ◆아이리버의 DNA와 e북
이 대표가 던진 승부수는 전자책으로 불리는 'e북'이었다. 애플이 아이폰4와 태블릿PC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매출이 주춤하긴 했으나 아이리버 명성 회복의 가능성을 e북 시장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LG디스플레이와 손잡고 중국에 e북 합작법인을 세운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간 가동률이 낮았던 중국 공장에서 9월께 e북 생산을 시작하면 가격을 낮춘 e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7인치 사이즈의 태블릿PC 모형과 차세대 e북인 '커버 스토리'를 꺼내보였다. 아이리버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었다. 이 대표는 "아이리버에는 디자인이라는 DNA가 흐른다"며 "LCD 기반의 태블릿PC와 컬러 e잉크를 사용한 차세대 e북을 내년께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태생은 전자책이지만 태블릿PC가 담당할 수 있는 기능을 부가하면서 디자인과 감성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잡아보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