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임금피크제 '4가지 조건' 마련

총액 임금 늘리지 않고 적용대상 3급이하 제한 등
공기업 '가이드라인' 될듯
한국전력이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조건부 도입'방침을 정했다.

한전은 지난달 30일 열린 이사회에서 '네 가지 조건'을 전제로 정년 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네 가지 조건은 △회사의 임금 총액을 늘리지 말아야 하고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직원이 받는 임금을 임금피크제 시행 직전 임금의 70%(평균) 미만으로 낮춰야 하고 △임금피크제로 늘어나는 인원보다 신규 채용 인원이 많아야 하고 △임금 피크제 적용 대상을 3급 이하(차장 · 과장급 이하로 노조 가입 대상)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제 조건에 대해 정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공기업 임금피크제의 가이드라인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단순히 기존 직원들의 정년 연장 수단쯤으로 여겨지고 청년 일자리를 뺏어서는 안 된다"며 "한전 이사회의 결정은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전 이사회의 결정에 정부가 사실상 동의함에 따라 향후 공기업 경영 평가와 기관장 평가 때 이 같은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적용했는지 여부가 '노사 관계 합리화'점수를 산출할 때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한전 경영진이 이 같은 내용의 전제조건을 노조에 관철시킬 수 있을지 여부다. 한전 이사회가 제시한 조건은 올해 초 노사간 단체협상을 통해 도입하기로 한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전의 경우 만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서 정년을 만 58세에서 만 60세로 늘리기로 했는데,임금피크제 기간(4년간)직원의 임금을 평균 80% 수준으로 맞추었다. 임금 피크제 적용 대상도 전 직원(1~6급)으로 가이드라인보다 범위가 넓다. 또 2008년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정원을 2400여명 줄여놓은 상태라 신규 채용을 늘리기가 만만치 않다.

한전 노조 관계자는 "정부나 회사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지만 단체협약은 2년간 유효하다"며 "그 전에 단협을 바꾸자고 하는 것은 계약 위반"이라며 이미 합의한 임금피크제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한전의 임금피크제는 당분간 공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전 경영진은 그동안 정부의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만 쳐다보다가 구체적인 시행 규정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