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은 '반대의 역사'] "철 만들어 어디 쓰나…차라리 밥 해결"

박정희ㆍ박태준 빼고 모두 포철 반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008년 4월1일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국내외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던 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가 없었다면 현재의 포스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국내 경제의 산업화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포스코 건설도 당시 엄청난 반대여론에 부딪쳤다.

국내 제철소 건설의 역사는 자유당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복구 사업으로 인해 철강재 수요가 급증하자 이승만 정부는 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시도했다. 하지만 매번 재원과 기술 부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다. 제철소 건설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다. 박 전 대통령은 "자동차 조선 기계 등의 공업화를 위해서는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일관제철소 건설이 선행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제철입국' 행보를 시작했다. 1965년 7월 경제기획원이 입안한 '종합제철소 건설계획안'이 경제장관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제철소 건설이 본격 추진됐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참담한 경제 상황에서 제철소 건립의 꿈은 국내외의 회의적인 시각과 반대여론 등으로 벽에 부딪쳤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1억달러에 이르는 건설비용은 당시 연간 수출액이 1억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이 없고 자원 낭비며,전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제철소 건설로 국가부채와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세계은행(IBRD)은 제철소 건설이 한국의 힘에 부치는 일이라며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언론도 가세했다. 주요 신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인데 지금 우리에겐 제철소를 지을 만한 막대한 자금이 없다"며 "차라리 철강을 수입해 쓰자"고 했다.

또 "철강 60만~100만t을 생산하는 것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장난감 같은 것이다. 수입하는 것보다 두세 배의 생산비를 넣어야 하는데 부실기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국회도 여야 구분 없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1965년 6월9일 제50회 국회 본회의에서 한 야당 의원은 "제철공장을 짓는다 해도 원료도 없고 쓸 곳도 없다. 정부가 지급보증해 건설되는 공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은 "차라리 밥이나 해결하자. 철강 사업에서 어떻게 수지가 맞을 수 있겠는가,그런 동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며 제철소 건설의 '무모함'을 성토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은 농업개발에 사용할 자금이 제철소 건설로 전용될 경우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우리도 산업의 쌀을 만들어야 한다"며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1969년 일본이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으로 내놓은 대일청구권 자금 중 7300만달러와 일본수출입은행의 차관 5000만달러 등 총 1억2300만달러를 조달,1970년 4월1일 착공했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1973년 6월9일 1고로에서 '쇳물'을 쏟아내자 반대론자들은 서서히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