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읽는 경영] (5) 환란이후 300→100%대로…위기에도 '꿋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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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적절한 부채비율은1990년대 중반 국내 A전자회사는 인도에 현지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잠재력이 큰 인도 시장에서 수년 내에 수요가 크게 늘 것이라는 판단으로 현지 생산라인도 신설할 계획이었다. 필요한 자금은 인도의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아 조달하려고 했다. 은행에서는 라인 계획을 검토한 뒤,소요되는 자금의 절반을 빌려줄 테니 나머지는 증자를 통해 자체 조달할 것을 요구했다. 즉,부채비율 100%로 맞춰 균등 부담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인도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한국의 20분의 1 수준으로 경제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는 의외였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비율이 평균 300%가 넘는 시절이었다. 국내 금융회사가 기업에 시설자금을 대출할 때 대출자금과 사내자금의 비율을 동일하게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분수에 넘치는 빚도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여건이었던 셈이다. 그 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외환위기는 넘쳐나는 국내 자금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금융회사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빌려와 국내에서 장기로 대출하면서 발생한 유동성위기가 발단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과도한 부채비율이었다.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감당하기 힘든 빚을 안고 있던 기업들이 타격을 입었고 시장에서 퇴출됐다.
당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등장한 적정 부채비율은 200% 이하였다. 이후 국내 제조기업의 부채비율은 놀랄 만큼 개선됐다. 2006년과 2007년에는 100% 이하로 유지됐고 지금도 100%를 살짝 넘긴 수준이다. 이 같은 건전한 재무구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유동성위기를 피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인도은행은 200년의 긴 역사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 선진국인 영국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경영관리 방식이 선진화됐다. 결과적으로 인도 시중은행의 시설자금에 대한 부채비율 100% 유지 정책은 A사 현지법인의 자본구조를 안정화하는 계기가 됐다. 부채비율의 적정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부채비율 관리야말로 기업 생존을 담보하는 필수조건이라는 점이다. 금융회사도 기본에 충실한 관리로 실물경제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정인 <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