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만·과욕…성공에 취한 기업 노리는 몰락의 징후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짐 콜린스 지음 | 김명철 옮김 | 김영사 | 264쪽 | 1만3000원
짐 콜린스의 '몰락 5단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조사를 토대로 성공하는 기업들의 특징을 밝혀낸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저자 짐 콜린스는 2001년 또 하나의 명저를 내놓았다. 2000쪽 분량의 인터뷰와 6000여건의 논문 조사,1만5000시간의 작업을 거쳐 도약에 성공한 회사들의 롱런 비결을 연구한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였다.

그러나 2008년 9월25일 비행기 안에서 뉴욕 맨해튼 전경을 내려다보는 그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에 있던 리먼 브러더스는 158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끝내 파산했다. <포천> 선정 500대 기업 중 156위를 차지했던 베어스턴스는 굴욕적인 협상 끝에 JP모건에 인수됐다. 만신창이가 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은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고,메릴린치는 공개매각됐다. 크고 강한 기업들,결코 망할 것 같지 않던 '위대한 기업'들이 거대한 도미노처럼 잇달아 무너지는 걸 본 기분을 콜린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마치 수박 두 통을 한꺼번에 삼킨 뱀이 된 기분이다"라고.《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는 위대했던 기업들의 몰락을 지켜본 짐 콜린스가 그 원인을 추적해 몰락의 징후들을 단계별로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예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그가 밝혀낸 기업 몰락의 5단계는 사람이든 기업이든 경청할 만하다. 몸에 암을 지니고도 알지 못한 채 말기에 이르는 것처럼 기업도 미리 점검하지 않으면 몰락의 징후가 가까이 있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몰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몰락의 첫 단계이자 첫 번째 이유는 '성공으로부터 생겨나는 자만심'이다. 콜린스는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 거만해지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 요인을 잊을 때 몰락의 1단계가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1990년대 중반 10년 만에 연매출이 50억달러에서 270억달러로 늘어나는 등 커다란 성공을 이어간 모토로라는 자만하기 시작했다. 무선통신 시장은 이미 디지털 기술로 이동하고 있는데도 모토로라 경영진은 1995년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한 초소형 휴대폰 단말기를 출시하며 기고만장했다. 경영진 중 한 사람은 "4300만명의 아날로그 고객이 있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라고 했을 정도다. 결국 세계 1위의 휴대폰 제조업체로서 50%에 육박했던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은 1999년 17%로 추락했고,몰락의 1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콜린스는 말한다. 몰락의 두 번째 징후는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것이다. 더 큰 규모,더 높은 성장률,더 많은 찬사,성공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욕심을 내다가 도를 넘어 큰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 월마트보다 4년 앞서 시장에 진출해 한때 승승장구했던 유통업체 에임스가 그런 사례다. 에임스는 1988년 1년 안에 회사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며 자이레백화점을 사들였다. 덕분에 이듬해까지 매출은 두 배 이상 늘었으나 '소도시와 시골에 기반을 둔 대형할인점'이라는 당초의 전략이 흔들리는 바람에 1986~1992년의 주식 누적수익률은 98%나 떨어졌다. 모토로라,러버메이드,머크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콜린스는 "현실 안주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과욕"이라고 경고한다.

몰락의 세 번째 단계는 위험과 위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내부에 경고 신호가 늘어난다. 그런데도 외부 성과는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리더들은 애써 위험의 징후들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부정적인 데이터는 축소하고 긍정적인 데이터는 부풀린다. 사실에 근거한 활발한 대화는 사라지고 마침내 가파른 하락세가 눈에 띄는 4단계로 진입한다. 그제서야 구원투수를 찾아 나서지만 흔히 등장하는 구원투수들은 과감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전략,급격한 전환,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안 등의 극약 처방을 선호하다 추락을 가속화한다.

몰락의 마지막 단계는 거듭된 차질과 실책으로 재무적 지표가 부실해지고 마침내 기업이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을 다하는 것이다. 이때 구성원들은 희망을 잃고 조직이 심하게 위축되며,극단적일 경우 완전히 몰락한다. 콜린스는 이 같은 몰락의 5단계를 보여주면서 "위대한 기업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고,몰락의 징후 대책을 강구한다면 5단계까지 추락하지 않는 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강조한다. 4단계까지 떨어져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올바른 진단과 과감한 개혁으로 2006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제록스가 그런 사례다. HP,뉴코,IBM,머크,모토로라 등도 한 번쯤은 몰락의 위기를 경험했다. 저자가 "몰락에 대한 연구는 바로 희망을 창조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