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구조조정…부채비율 '일방 잣대'가 문제

현대상선, 총부채 6조 넘지만 이자부담 있는 부채는 1조 안돼
대선건설, 대주주예금 900억 담보 "갚을수있다"vs"인정못해" 팽팽
주요 기업과 건설사에 대한 재무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총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눠서 산출하는 '부채비율'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상선 대선건설 등 구조조정 대상에 선정된 기업들은 채권단이 획일적으로 부채비율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신용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 등 채권단은 부채비율이야말로 채권 보전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평가지표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부채비율이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이긴 하지만 현재의 유동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드러난 숫자의 이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채도 쪼개고 나눠봐야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문제로 채권단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현대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높은 부채비율이 아킬레스건이 됐다. 하지만 재무제표상 산출된 숫자에 매몰되지 말고 부채의 내용을 더 상세히 분석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상선의 작년 말 기준 부채는 6조1267억원으로 부채비율은 276%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는 1조2870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매입 채무와 미지급금 등 영업활동으로 생기는 일상적인 부채를 제외하고 실제로 이자 부담이 발생하는 부채만 따지면 단기차입금 759억원과 유동성 장기부채 5447억원 등 1조원이 채 안 된다. 당장 융통이 가능한 유동자산 중 현금성 자산만 7714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채를 상환하는 데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5조원에 가까운 비유동부채도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유동부채 중 3조2382억원은 선박과 관련된 장기 미지급금으로 고가의 선박을 빌리거나 매입하는 데서 비롯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치산업인 해운업의 특성상 선박은 사실상 부채가 아닌 영업을 위한 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달 채권단으로부터 퇴출 기준인 'D등급'을 받아 반발 중인 대선건설 역시 1687%로 고공비행 중인 부채비율에 발목이 잡혔다. 911억원의 부채 중 이자 부담이 있는 부채도 899억원이나 된다. 반면 유동자산은 148억원으로 부채의 16%에 그치고,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은 34억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기로 빌린 은행 대출에 900억원의 대주주 예금이 담보로 잡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Y회계법인 관계자는 "채권단은 대주주의 담보와 회사의 담보를 구별했지만,대주주가 일종의 지급보증을 한 상태여서 원리금 상환능력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작년 매출이 13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회사의 영업이 부진한 점이 퇴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대주주의 담보는 회사의 담보가 아니라는 채권단의 판단은 형식논리에 치우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자 내는 부채와 현금성 있는 자산
이처럼 기업 부채는 숫자로만 보지 말고 이자 부담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보유 자산 중 현금성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감가상각비나 장기차입금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조선이나 해운 등은 영업이익이나 순이익이 아닌 현금성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추정해내는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다"며 "부채비율을 절대기준으로 보지 말고 순이자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따져서 원리금 보상능력 유무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상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해 자산의 성격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비유동자산으로 분류되는 투자자산도 비상시엔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정기예금과 매도가능증권 항목이다. 당초 장기 목적으로 자금을 유치하거나 투자하기는 했지만 현금이 필요할 경우 손실을 보더라도 현금화가 가능한 항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재무상태표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의미여서 오히려 신용평가의 신뢰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