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물리는 親李·靑·총리실 '3각 권력암투'

정두언-박영준 충돌 '2라운드'
총리 거취놓고 靑ㆍ총리실 갈등 현정부서 큰 싸움만 5번째
'55인의 선상반란''7인의 사무라이''상왕과 야전사령관의 혈투''거사설'….

무협소설 얘기가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년반 동안 끊이지 않아 온 '친이명박' 세력 내 권력 암투를 빗댄 말들이다. '6 · 2 지방선거' 이후 쇄신론을 놓고 격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사건,선진국민연대 인사 개입 의혹 등 여권 내 물고 물리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다. 과거 정권에선 출범 초기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쳤다가 임기 중반이 넘어서면서 여권 내 갈등이 표출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반면 현 정권은 2007년 말 대선 직후부터 다툼이 표면화돼 큰 싸움만 다섯 차례가 넘는다. 특히 인사철만 되면 불거진다. 대선 승리 공신들이면서도 권력에서 소외된 세력들의 반발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다간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경계령을 내렸던 '집권 3년차 증후군'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여권 내에서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비정치인 출신이라 여러 세력을 끌어모아 대선을 치르다 보니 응집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게 '권력 핵심부'의 헤게모니 싸움 배경이다. 여권 내 권력의 축은 세 갈래다. 이상득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정두언 의원을 각각 정점으로 하고 있다. 1차 충돌은 2008년 1월 현 정부 출범 직전 내각 및 청와대 참모 인선 과정에서 벌어졌다. 요직에 계파 인사 한 사람이라도 더 포진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이상득계의 완승이었다. 이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현 국무차장이 실세로 떠올랐다. 박 차장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았다. 정두언계는 뒤로 밀렸다. 박 비서관은 '왕비서관'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상황은 얼마 가지 않아 뒤집어졌다. 2008년 4월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재오 전 의원 측에 힘이 쏠렸다. 이 전 의원과 이방호 당시 사무총장 라인이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이 와중에 이른바 '선상반란'이 일어났다. 한나라당 공천자 19명이 이상득 의원의 공천 반납을 요구한 것이다. 동참자는 55명으로 늘어났다. 주모자로 정두언 의원이 지목됐다. 이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의원은 부활했다. 그렇지만 불과 두 달 뒤 숨죽이고 있던 정 의원은 '권력 사유화' 발언으로 박 비서관을 정면에서 공격했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 주변 일부 인사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결국 박 비서관은 눈물을 흘리며 야인생활로 들어갔다. 지난해 1월 박 비서관은 차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복귀했다. '왕차관'이란 타이틀이 붙여졌다. 정 의원이 축전을 보내면서 화해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으나 지난해 6월 '7인의 사무라이' 사건이 터졌다. 정 의원을 포함한 친이 직계 의원 7명이 '민심 이반은 현 정부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심판'이라며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이 의원은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하면서 여권 내 싸움은 잠복기에 들어갔다.

'6 · 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친이 의원들은 청와대 핵심 참모를 겨냥,대대적 물갈이 인사를 하라고 압박했다. 특히 지난달 9일 외곽 친이계 소장파들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쇄신 건의를 할 것이라는 이른바 '거사설'을 흘리기도 했다. 최근 영포라인,선진국민연대 월권 파문은 박 차장의 청와대 입성을 견제하려는 데서 출발했다는 설들이 나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