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신문희 교수 "굿거리 장단의 성악…'아름다운 나라' 히트 비결이죠"

크로스 오버 뮤지션 신문희 우크라이나 오데사음대 교수
혼자 있을땐 집순이ㆍ무대에선 여전사
월드컵 응원가 부를땐 목터지게
만난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이번 월드컵 때도 목이 터져라 응원했죠.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 때 SBS의 '2010 남아공월드컵 국민응원 대축제 승리의 함성' 축하공연에서 붉은 옷을 입고 나가 무대를 뒤흔들었는데,아쉽게도 제가 노래할 때만 지더라고요. "

축구를 좋아하는 크로스오버 뮤지션 신문희씨(우크라이나 오데사국립음대 교수).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파리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선구자'와 '아리랑'을 부르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는 듣기 좋았는데 그렇게 맥빠지고 슬퍼보였다. "올레 올레 올레~"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열정적인 리듬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힘있는 노래,희망적인 노래가 있어야겠다. '2년 후 우크라이나 국립음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뒤에도 마음 한 구석엔 늘 그 생각이 맴돌았다. 오데사 국립오페라단 지도교수와 이탈리아 빈센조 벨리니 콩쿠르 최연소 심사위원이 됐을 때는 더욱 그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같이 즐길 수 있는 노래를 만들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를 맡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의 꿈은 2005년 크로스오버 앨범 1집 '위스퍼링 오브 더 문'을 거쳐 2집 '더 패션'의 타이틀곡 '아름다운 나라'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걸음걸음도 살며시 달님이 오시네.밤 달빛에도 참 어여뻐라…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어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서정적인 가사에 국악과 성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곡은 나오자마자 벅스뮤직 등 각종 음반차트 1위에 올랐다.

그는 이 노래로 '건국 60년 특집 나라사랑 독도함 콘서트',임진각 평화누리 타종무대 등 대형 공연무대를 휩쓸며 국내에 크로스오버 열풍을 몰고왔다. 이 노래는 인기 TV 프로그램 '1박2일-백두산에 가다'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영국 왕립음대의 세계적인 성악가 줄리 케너드를 사사하고 이탈리아 중앙음악대를 졸업한 그는 "영국 사람들이 '박지성송'을 만들어 부르는 걸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며 "이번 월드컵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 앞에서 노래란 노래는 다 불러젖히던 신 교수이지만 무대에 서는 것을 제외하면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전형적인 것,화려하게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전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큰 무대에서도 귀고리,목걸이 하나 하지 않죠.하얀 원석 반지 하나만 유일하게 해요. "

그러고 보니 의상도 심플하다. 단색의 코발트빛 원피스.디자이너 케이킴이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성격상 뒤끝도 없고 내숭도 없고 굉장히 자연적이에요. 노래도 그래요. 발성도 일부러 만들지 않고 그대로 하죠.그래서 성악가들로부터 가끔 왜 그러냐는 소리도 들어요. "그는 이왕 크로스오버를 개척할 바에야 외국곡을 선택하면 멋있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대로 하기 싫었다고 말했다. "남들이 100미터 달리기 1등 하면 나는 투포환 나간다. 멀리 뛰기 나간다. 크로스오버도 제대로 하려면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결국 '아름다운 나라'에서 그 접점을 찾았습니다. 크로스오버는 아주 이질적인 장르를 결합해서 만드는 음악이잖아요. 그런데 섞은 후가 더 아름다워야 하거든요. 양쪽 장르를 확실하게 알아야 가능한 거죠.한마디로 꾼이어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성악 전공자들이 많은데 크로스오버에는 관심을 덜 갖는 것 같다"면서 "우리가 한국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이를 즐기는 노래를 만들어야 해외에서도 가치가 올라간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나라'를 부르면서 아름다운 시리즈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이거 민족주의 마케팅이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죠 뭐.독도함 콘서트 마지막에 태극기 패션을 선보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도 양쪽으로 나눠요. 빨간 옷 입고 MBC에서 노래했을 땐 좌파라 하고,KBS의 올림픽 축하무대에서 '이 땅의 행복…'을 노래할 땐 우파라 하고 거 참….이런 이분법이 예술계에까지 번지는 게 안타까워요. "

그는 "크로스오버야말로 대충 하면 망친다"고도 했다. "굿거리 장단하고 서양음악 섞은 것이 '아름다운 나라'잖아요. 양쪽을 다 잘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죠.결과적으로 원곡보다 좋아야 의미있는 거니까요. 크로스오버를 누가 잘하냐 그러면 이탈리아에서는 안드레아 보첼리,영국에선 사라 브라이트만,이렇게 나오죠.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걸 제가 진짜로 해보고 싶은 거죠."

다음 달 말 대마도에서 공연을 갖는 그는 "이번 공연은 개런티도 많이 받지 않고 가는데 거기 가서 '아름다운 나라'를 부르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제목이 '재팬 코리아 프렌즈'예요. 다른 비싼 제의 뿌리치고 가는 거라 기대도 크죠."대마도 콘서트 이후에는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정상회의 축하공연에 참가할 예정이다.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이 많이 사는 만큼 고려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것."영국에서 공부할 때 인종차별을 많이 느꼈어요.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게 그만큼 심하다는 방증이죠.잘 싸우기 위해 영어공부를 더 했죠.그러니 금방 실력이 늘더군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성악이나 국악만 하고 크로스오버를 꿈꾸지 않았다면 꿈은 이뤄지지 않았겠지요. 평상시엔 '집순이'인 제가 무대에서는 '카리스마 여전사' 소리를 듣는 것도 아마 이 같은 각오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그는 나이 든 후 혜택 받지 못한 아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노는 것,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진정한 음악이요? 사람의 감성을 터치할 수 있는 소리,새소리도 우리 마음을 건드릴 때 음악 같다고 하잖아요. 그냥 의미 없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음악의 탈을 쓴 소음이죠.기쁘게 하거나 뭉클하게 하는 소리의 밑바닥,크로스오버의 원천도 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