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구호만으론 안될 에너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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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만 사태 환경규제 힘실려태안반도 앞바다에서 기름이 유출됐던 당시 많은 국민들이 직접 오염된 장소에 달려가 환경을 살리려고 했던 것이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유출됐던 기름이 모두 7만8000배럴이었는데 하루에도 그 규모의 25%(2만배럴 추정)나 되는 기름이 멕시코만 심해저에서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일 대형 정유차량 800여대가 원유를 바다에 붓는 것과 같으며 지난 50여 일 동안 흘러나온 기름 덩어리가 남한 크기의 바다를 옮겨 다니고 있다고 상상하면 된다.
원자력·재생에너지 비중 높여야
미국에서 가장 컸던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슨사의 기름유출 사건보다 이제 멕시코만 원유 유출이 훨씬 큰 사고가 됐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제 유출을 막게 될지,유출 규모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미국 남부 5개주의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어떨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4월20일 연해저 원유시추장비에서 화재가 발생할 때만 해도 원유유출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으나 여론의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오바마 대통령이 급기야 네 차례나 현장에 와서 화급하게 이를 막으려고 했다. 2005년 카트리나 재해 발생시 부시 대통령이 초기 대응에 실패해 재임중 커다란 실책으로 기록됐던 것과 같이 멕시코만 원유유출에 대한 미흡한 대응이 오바마 정부의 실수로도 평가되면서 금년 11월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당장은 연해저 원유개발을 금지시켰지만 에너지 정책상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미국은 필요한 석유자원의 57%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고 일부 수입국가와는 관계가 매끄럽지 못해 안정적인 에너지 도입에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세 가지 방안, 즉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원자력을 활용하며 연해저 석유자원 개발을 제시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연해저 개발에 차질을 빚게 됐다.
멕시코만에서 생산하는 규모가 미국내 원유의 27%, 천연가스의 20%를 담당하고 있고 육상 생산비중보다 해상 생산이 증가해 왔으며 여기에 종사하는 인력도 적지 않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뿐만 아니라 고용 측면에서도 무한정 멕시코만의 연해저 개발을 묶어 둘 수도 없는 형편이다. 재생에너지 역시 2008년 현재 에너지 수요의 7%만을 담당하고 있을 뿐 향후 상당한 투자를 한다고 해도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울러 원자력 역시 에너지 공급의 8% 수준에 불과하고 1995년 이후 투자가 멈춘 상태여서 대대적인 투자와 함께 국민의 호응 없이는 민간차원의 투자에만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남부 5개주는 이번 사고로 미국 어패류의 3분의 1을 생산해 왔던 수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고 산업의 중요한 부문이었던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하다. 나아가 어류 및 조류의 서식지가 위협을 받으면서 먹이사슬 고리가 끊어질 환경재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화석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고 현재 논의중인 탄소배출을 규제하는 에너지 법안을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자는 의견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에너지 안보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석유 및 가스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태안반도 기름유출로 생태계 위협을 받았던 경험과 이번 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선 원유수송 및 비축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강점인 원자력 에너지 비중을 늘려나가면서 불과 2.2%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기술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조윤수 駐휴스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