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장하성 펀드'…상장사 지분 속속 처분

대한화섬·태광산업·일성신약…뚜렷한 수익 못내고 투자금 회수
일명 '장하성펀드'(약칭 장펀드)로 불리는 '라자드한국기업구조개선펀드'가 상장사 보유 지분을 처분하는 정황이 잇달아 포착되고 있다. 장펀드가 명분으로 내건 기업지배구조 개선 시도가 무위에 그친 데다 수익률 면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관측이다.

장펀드는 2006년 미국 자산운용사 라자드에셋매니지먼트가 설립한 사모펀드로,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그가 운영위원을 맡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투자 대상 기업 선정을 자문해 '장하성펀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장펀드는 그동안 일부 지분을 확보한 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규합해 해당 기업에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왔다. ◆잇단 외국인 지분율 축소장펀드의 투자 종목으로 관심을 모은 일성신약은 외국인 지분율이 올 정기 주총일인 지난 3월19일 7.72%에 달했지만 지난 9일 4.03%까지 낮아졌다. 장펀드가 주총에서 이사 · 감사 선임 및 시스코통상과의 합병안에 반대했지만 표 대결에서 진 뒤 외국인 지분율이 급격하게 내려간 것이다.

특히 지난 7일엔 3.98%까지 낮아져 장펀드의 작년 말 일성신약 지분율(4.03%)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장펀드가 적어도 일부 지분을 처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펀드는 주총 표 대결에서 진 후 주가 상승을 틈타 지분을 서둘러 판 것으로 안다"며 "현재 남아 있는 외국인 지분은 2000년대 초반부터 투자해온 다른 외국계 장기투자펀드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장펀드와 최대주주가 3월12일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였던 태광산업도 외국인 지분율이 주총일 당시 9.40%에서 이달 9일 8.11%로 1.3%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장펀드의 태광산업 지분율은 작년 말 4.25%였다. 대한화섬도 외국인 지분율이 같은 기간 11.89%에서 11.37%로 내려가 장펀드의 매도 가능성이 제기됐다. 장펀드는 지난달 21일 현대그린푸드(옛 현대H&S) 지분을 6.12%에서 4.66%로 낮췄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장펀드 보유 종목 대부분이 '대량 보유 상황 공시 의무'(지분 5% 이상)에서 벗어나 지분율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지나친 원칙주의…주주도 기업도 피해

장펀드의 잇단 '지분 빼기'는 역시 펀드의 기본 목적인 '수익률'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 최대주주 · 경영진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장펀드는 대립 일변도의 전략을 유지,방법론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지배구조부터 고치고 보자는 '지나친 원칙주의'로 인해 주가는 주가대로 묶이고 해당 기업은 경영이나 이미지에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시장에선 장펀드의 간섭에서 벗어난 것을 호재로 여기는 모습이다. 일성신약은 작년 초부터 1년 넘게 주가가 6만~7만원대에서 맴돌다 주총일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두 달 만인 5월13일 1년 신고가(10만5000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 3월 장펀드가 보유 지분 9.79%를 모두 처분했다고 공시한 에스에프에이는 당시 3만5000원대이던 주가가 현재 6만2500원까지 올랐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기업지배구조 개선펀드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업가치를 높여 펀드와 기업이 함께 이익을 누리자는 것"이라며 "잘못된 경영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기업 개선 과정의 일부인데 장펀드는 이를 목표로 삼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장기 펀드인데도 서둘러 지분을 정리한 것을 보면 소수 지분만을 보유한 채 일단 최대주주와 싸움부터 벌이는 방식으론 주가가 오르기 어렵다는 점을 파악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펀드의 지분 처분 사실과 이유에 대해 동일권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 대표는 "투자 결정은 전적으로 미국 라자드에셋이 하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다"며 "자산운용사가 주식을 샀는지 팔았는지 묻는 것은 비윤리적인 질문"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주총장에서 자신들의 지분율을 공개하며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끌어모으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