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IMF 총재라는 자리

기자가 바로 코앞에서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게 "아시아에서,무엇보다 한국인이 가까운 시기에 총재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다. 최근 미국 워싱턴 IMF본부에서 그가 아시아지역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가진 회견장이었다.

프랑스 재무장관 출신인 스트로스 칸 총재는 엷은 웃음을 짓더니 "(한국인 총재도) 환영한다.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답했다. 경계심과 기득권을 노출한 대목은 그 다음이었다. 그는 "과거부터 IMF 총재는 유럽에서 나와야 한다는 일종의 합의도 전적으로 찬성한다"며 "20년 후에나 신흥국가나 저소득 국가에서 내 후임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스트로스 칸 총재의 견제심리는 IMF 회원국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신경전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신흥국가들은 몇 달 전 IMF 이사회에서 총재직을 개방하자고 촉구했다.

유럽국가들이 "그럼 세계은행 총재직은 어떻게 하느냐"고 대응했고,세계은행 총재국인 미국은 "(일본이 총재직을 전담하는) 아시아개발은행도 그렇게 하자"며 서로 꼬리를 물며 견제했다고 한다.

IMF가 창설된 이래 총재직은 유럽국가들의 몫이었다. 자매기구인 세계은행 총재직은 미국이 도맡아왔다. 두 진영이 휘어잡고 있는 세계경제 패권을 감안해 나눠가졌다. 그런 IMF와 세계은행이 지배구조 개혁작업을 벌이고 있다. 막아설 수 없는 대세다. 중국 인도 브라질 한국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력 급부상에 영향을 받았다. 네 차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유럽국가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은 IMF와 세계은행 내 자신들의 의결권 일부를 신흥국가들에 양보키로 합의했다. 세력 균형이 마뜩하지 않지만 비용 분담이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IMF가 500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재원을 추가로 충당했는데 신흥국가들이 기여한 규모는 상당했다.

세계의 중앙은행인 IMF는 냉혹한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다. 지난 2월 스트로스 칸 총재 특별고문에 주민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가 임명된 반면 IMF 주요 보고서에서 대만은 '중국의 대만성(Taiwan Province of China)'으로 표기돼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에 구제금융을 빌려주는 대가로 기업과 금융권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다 두 자릿수 고금리 긴축정책을 강요한 것도 IMF다. 고통스런 처방이었기에 한국 국민들은 '외환위기'라기보다 'IMF 위기'라고 기억한다. G20은 오는 11월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저승사자' IMF의 지배구조 개혁작업을 결론내기로 했다. IMF의 영향력을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으로선 역사적인 아이러니다. IMF는 지난 7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글 보고서를 추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로만 서비스해 왔다. 앞으로 노력하기에 따라 IMF본부에서 유럽,미국인들 못지않게 한국인 스태프들이 북적대는 풍경도 기대할 만하다.

한국이 머지않은 시기에 IMF 총재를 배출할 수 있을까. G20 서울 정상회의 성공 여부는 이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