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과르네리

지금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바이올린은 1741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다. 지난해 러시아의 한 부호가 1000만달러(약 120억원)에 사들였다. 과르네리는 17~18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 과르네리 집안에서 만든 악기다. 특히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1698~1744년)가 제작한 명품은 예수라는 뜻의 '델 제수'를 붙여 과르네리 델 제수로 부른다. 현재 140여 대가 남아 있다. 니콜로 파가니니,아이작 스턴,장영주 등이 썼거나 쓰고 있다.

또 다른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 현악기의 명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년) 가문 생산품이다. 바이올린 첼로 하프 등 1100여 점을 제작했으나 지금은 640여대만 전해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첼리스트 정명화 등이 사용하고 있다. 두 악기는 소리와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여성적이고 예쁜 소리를 내는 반면 과르네리는 남성적이면서 깊은 음색을 지녔다는 평가다. 마무리도 스트라디바리우스는 깔끔하지만 과르네리는 거친 편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정교한 설계를 토대로 제작된 반면 과르네리는 직관에 따라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할까. 그런데도 값은 과르네리가 더 비싸다. 희소성이 있는데다 연주자들 사이에 선호도가 높아서란다.

이들 악기의 소리가 뛰어난 이유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그 중에 17~18세기 이탈리아 날씨가 유난히 추웠던 게 명기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소재로 쓰인 나무의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뭇결의 밀도가 높아 소리의 스펙트럼이 균일하다는 것이다. 바이올린 위에 벌레퇴치용 특수 도료를 바른 게 잡음을 제거하는 효과를 낸다는 의견도 있다.

과르네리가 만년에 만든 바이올린이 미국 시카고에 있는 명품악기점 '베인 앤드 후시'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이다. 가격은 1800만달러(약 210억원).지난해 120억원에 팔린 제품과 같은 1741년산 델 제수지만 19세기 벨기에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앙리 비외탕이 연주했다고 해서 '과르네리 비외탕'으로 불리는 제품이다.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논란이 있으나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내는 데다 신비감이 깃든 명품이어서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영국의 거부가 내놓은 이 악기가 누구의 품으로 들어갈지 궁금하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