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30년 기자 하고도 작문책 읽는 이
명강의 비결은 철저한 준비·면담
오는 9월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선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 1000명이 모여 세계 최다 합주 기네스 기록(2008년 10월 대만,918명)에 도전한다. 국내의 색소폰 열풍을 입증하는 행사다. 현재 아마추어 색소폰 인구는 줄잡아 30만명.50대가 35%라고 한다. 현역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이 배우는 셈이다.

2009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6세,여자 82세. 평균 퇴직연령은 54세다. 누구에게나 인생 2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인 부부는 자녀 둘을 결혼시킨 뒤 한날 한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갔다. 작은 집을 짓고 색소폰을 배워 불면서 텃밭 한쪽엔 채소와 꽃,다른 한쪽엔 나무를 키우며 지낸다. 두 사람 모두 배는 쑥 들어가고 팔다리는 탄탄하다.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나면 따라하고 싶지만 그 전에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다. 취업 준비생들이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따로 배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데다 대학 졸업생이라면 전공이 뭐든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글을 쓰자면 읽고,생각을 정리하고,앞뒤좌우가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 일기든 감상문이든 비평문이든 글을 쓰다 보면 기왕이면 더 잘 썼으면 싶고 그런 바람은 좋은 글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글쓰기는 이렇게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

충북 제천의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됐지만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 어떻게 해야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한 대목이라도 가슴에 새겨가게 할 수 있을까. 파워포인트를 사용할까,칠판에 쓰면서 할까. 가르치는 것도 기술이라는데 어떤 요령이 필요할까. 안타까운 마음에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온 동료 언론인에게 물어봤다. "가르치는 것도 기술일 텐데 좋은 수가 있으면 좀 알려줘요. " 그는 대답했다. "틀렸어요. 가르치는 데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 놀란 내게 그는 덧붙였다. "열심히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죠.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거예요. "

그는 수업시간 외에도 수시로 학생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해줬다고 했다. 마음과 시간을 할애했더니 그들 역시 마음을 열고 다가서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30년 기자 생활 동안 기사 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다며 강의에 도움이 될 만한 참고문헌을 소개해줬다.

부끄러웠다. 강의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준비엔 소홀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지방대학의 경우 교수 초빙에 어려움이 많다는 말이 생각났다. 스펙이 좋거나 유명한 인사를 임용하면 얼마 안 있어 서울 쪽으로 옮겨가거나 강의시간 외엔 학교에 머물지 않아 난처하다는 것이다. 연구와 강의도 중요하지만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도 필요한데 면담 시간을 내기 힘들어 하니 답답하다는 호소였다. 진심이란 무엇인가.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어하는 동료,쓰는 자에서 가르치는 자로 변신하고 싶어하는 동료를 보면서 안됐다거나 '그만큼 일했으면 적당히 쉬지 뭘' 식으로 대강 답하지 않고 강의하는 데 요긴한 자료를 추천해주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런 것들이야말로 진심이다.

진심이란 이처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계산 없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일러주는 것,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것일 게 틀림없다.

테크닉이 아니라 진심이 필요한 게 어디 대학교수뿐이랴.부모도,직장상사도,장관도,대통령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대하는 일의 기본은 진심 어린 배려다. 상대의 마음과 행동을 내 생각과 내 처지가 아닌 상대의 입장으로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강구하려 애쓸 때 감동은 생겨나고 감동이 일어야 변화도 생겨난다.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