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라운지] 산업현장 소모품 제조 '케이엠'

방진제품 잇단 국산화… 반도체 강국 '숨은 공신'
신병순 케이엠 대표(57)가 창업한 것은 21년 전인 1989년.한창 패기만만하던 30대 중반.그는 1년 만에 클린룸 작업자들이 착용하는 PVC무진장갑을 국산화했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신 대표는 제품을 납품하는 족족 퇴짜를 맞았다. 품질이 엉망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5t트럭 5대 물량을 공급하면 4대 물량이 퇴짜를 맞아 쓰레기로 버려졌다. 신 대표의 눈높이가 거래선의 기대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케이엠은 이런 곡절 끝에 일어섰다. 품질 개선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 끝에 퇴짜물량이 점차 줄어들었다. 3년 뒤엔 품질인증을 받고 1994년부터 누구나 거래하고 싶어하는 삼성전자 납품업체가 됐다. 지금도 삼성전자에 PVC무진장갑 전량을 독점공급하고 있다. 신 대표는 "매번 퇴짜를 맞을 땐 사업을 그만두고 싶었다"며 "힘겨운 상황에서도 개발자금을 끌어모으고 연구개발을 포기하지 않아 오늘의 케이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케이엠은 반도체 · LCD · 태양전지 생산라인 등에서 사용하는 세정용품 포장백 방진복 등 소모성 제품을 국산화함으로써 국내 반도체 및 LCD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국산화한 수술용 멸균포와 멸균포장재도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예상매출액은 720억원.국내외 5개 법인을 합칠 경우 1615억원에 달한다.

◆반도체 · LCD 생산현장 소모품 국산화케이엠의 사업노정은 '국산화의 길'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다. PVC무진장갑을 시작으로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세정용품인 와이퍼를 개발한 데 이어 방진복 글러브를 잇따라 국산화했다. 태양전지 생산 원료인 폴리실리콘 포장용기인 특수포장용기 버진PE(폴리에틸렌)백과 버진글러브(장갑)도 국산화해 작년 말부터 OCI에 공급하고 있다. 신 대표는 "개발한 지 1년도 안돼 OCI에 미국 렉서스,일본 도와가구와 함께 3분의 1씩 나눠 공급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며 "반도체 및 LCD 산업에 사용되는 소모품을 하나둘 국산화해 외국 업체들의 독점구조를 깨거나 경쟁하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물량도 미국 일본 유럽 등 25개국에 연간 2500만달러에 이른다.

중국 쑤저우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주문물량 증가로 70억원을 투자해 안성공장에 폴리실리콘용 특수포장용기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안성공장과 평창공장의 생산설비도 확충했다.

◆수술실 용품을 신성장 동력으로 강화이 회사는 수술포, 의사 · 간호사용 가운, 거즈 등 병원 수실용 패키지를 신수종사업으로 삼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 대표는 "10월 가동 목표로 강원도 철원에 50억원을 들여 수술포 생산공장을 추가로 짓는 중"이라며 "1회용 수술포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때 1회용 수술포를 국내 독점공급했던 존슨앤존슨도 케이엠과의 경쟁에 밀려 철수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는 의료기기나 의약품의 감염을 방지하는 멸균포장재를 국산화하고 지난해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신 대표는 "올 하반기부터 최근 인수한 안성2공장에서 양산에 나서 국내외 시장을 본격 공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