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쓰기의 화두는 사람…따뜻한 체온에 끌리더군요"

장편소설 '36.5도' 출간 김정현씨
"인간의 체온 36.5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나의 체온으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덥히고 나는 타인의 온도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

이쯤 되면 '중년 남성 전문 작가'라고 할만하다. 가정과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초상을 눈물나게 그렸던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씨(53)가 이번에는 중년의 세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장편소설 《36.5도》(역사와사람 펴냄)를 내놓았다. 김씨는 17년간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다 7년 후 자신마저 결국 죽고 만 자신의 친구를 소재로 한 《고향사진관》을 2008년에 발표했고,올해 초에는 《아버지의 눈물》을 출간했다. 모두 중년 남성의 얘기다. 작가는 여성의 시각에서 40~50대의 삶을 그린 소설은 무수히 많은데 비해 중년 남성이 자신의 인생을 재정립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은 상대적으로 드물다고 말한다. 가족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우정을 중요한 소재로 가져왔다.

"'우정'이란 덕목 자체를 거론하지 않을 정도로 잊고 사는 세상이 됐죠. 이게 잘못하면 가족하고 마찰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라 조심스러워요. 그런데 서둘러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중년 남자들의 자살률이 꽤 높다는 점이었어요. 대기업 간부나 대학교수도 자살을 하니….가족의 울타리에서 보면 마치 자신을 돈 벌어다주는 기계처럼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릴 때 간직한 우정,잊었던 친구들과의 믿음이 결여된 무언가를 채워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

런던의 안보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던 김인하는 갑자기 떠난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고,대기업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최수혁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극악하고 세속적인 부모가 늘 굴레다.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의리의 사나이 황대식 등은 서로의 콤플렉스를 껴안고 반평생의 전환점에서 또다시 얽혀 버린다. 경북 영주가 고향인 작가의 고향을 연상시킬 만한 한 지방도시가 소설의 배경이다. 그는 "읽어본 사람들은 본인 얘기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며 "저도 중년이니까 제 삶이 녹아있겠죠"라고 말했다.

10년째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작가는 중국의 5000년 역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와 위인들의 감춰진 이야기 등 쓰고 싶은 소재는 너무 많지만 티베트와 몽골,황하 발원지 등 중국 전역을 여행하며 취재하느라 손이 더디다고 했다.

"작가마다 자신의 원칙이 있겠죠.저에겐 단연코 '사람'이 화두예요.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분노합니다. 사람보다 다른 가치를 좇아가며 산다는 게 참 아쉬워요.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