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U-신문고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서울에선 주장관(主掌官)에게,지방에선 관찰사에게 상소를 올린다. 그래도 억울하면 사헌부에 고하고,그러고 나서도 억울함이 남아 있으면 신문고를 두드린다. '(경국대전).조선 태종 원년 대궐 밖 문루 위에 처음 설치된 신문고는 최후의 항고(抗告)이자 직접고발 수단이었다. 임금 직속의 의금부당직청이 접수된 소청을 닷새 내에 처리토록 하는 규정까지 뒀다.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고충처리의 통로였던 셈이다.

문제는 실천 방식이었다. 서울에 사는 관리나 양반이 주로 이용했고 일반 백성이나 노비,지방민들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떤 노비는 신문고를 울려서 억울한 사정을 알리려다 관헌의 제지로 광화문 앞에 걸려 있는 다른 종을 치고 처벌을 받는 일도 생겼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단 얘기다. 하지만 막힌 언로(言路)는 언젠가는 뚫리는 법이다. 신문고 이용이 어려워지자 백성들은 임금의 궐밖 행차를 기다려 직접 하소연하는 방안을 찾았다. 긴 나뭇가지에 탄원서를 쓴 천을 내걸거나,높은 곳에 올라가 큰 소리로 하소연했다. 징과 꽹과리를 치는 사람까지 생겼다. 이른바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이다. 정조는 이를 제도화해 민심을 살피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일성록'에는 정조의 행차 때 백성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 몰려와 격쟁한 것이 1289건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얼마전 국민권익위원회와 삼성전자가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전국 행정 · 교육기관에 민원신청을 할 수 있는 '국민신문고 스마트폰 서비스'협약을 맺더니 이번엔 서울시의회가 서울광장에 'U-신문고'를 설치해 내달부터 운영한다는 소식이다. 터치스크린이 장착된 대형 북 모양의 'U-신문고'에 시민들이 의견을 입력하면 의정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신문고가 넘쳐난다. 청와대는 물론 주요 정부부처,지방 행정기관까지 민원창구를 만들어 놨다. 그러나 접수된 민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처리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사리에 맞지 않는 요구나 무고(誣告)가 많아서인지 몰라도 민원이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모양이다. 조선시대 신문고에서 보듯 중요한 것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의지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