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5) 300조 기금운용이 성패갈라
입력
수정
수익률 1%P 낮아지면 보험료 부담 2.3%P 높아져평균 수명의 지속적 연장과 베이비붐 세대 은퇴로 한국의 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수익성·안정성 두 토끼 잡아야…자영업자 등 사각지대도 해소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는 저출산과 맞물려 국민연금 재정의 앞날을 어둡게 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을 받는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 강화와 재정안정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결코 쉽지 않다. 정부는 2007년 국민연금 제도의 급여수준을 대폭 인하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세대 간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연금은 재정적 균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 추계에 의하면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4%대로 올리거나 지급개시 연령을 재조정해야 장기적으로 수지를 맞출 수 있다. 이 같은 전망도 향후 출산율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현재 300조원 가까이 적립돼 있는 국민연금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는가는 보험료를 얼마나 인상해야 하는가와 직접 연결돼 있다. 예컨대 기금 운용수익률을 기본 가정보다 매년 1%포인트 올릴 수 있다면 보험료를 12%까지만 올려도 재정 안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반대로 수익률이 매년 1%포인트 낮아진다면 보험료 부담을 16%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 제도의 성패는 기금 운용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수익성만을 추구해 기금의 안정성을 해쳐서는 결코 안 된다. 기금 운용의 전문성 책임성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2008년 정부 부처로부터 독립된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기 위한 개정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법안은 국회에 제출 된 후 무려 3년 동안이나 계류 중이다. 고령화 위험을 말로만 걱정하고 정작 중요한 대비책 마련에는 늑장을 부리는 국회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보험료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는 많은 임시 · 일용직 근로자들이나 영세 자영업자 등 만연한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도 재정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 10명 중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는 사람은 4명도 채 안 된다. 고용주가 보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취약 근로자들을 사업장 가입자로 등록시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업장 가입을 위한 행정조치(채찍)를 강화하고,필요 시 영세 고용주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경제적 유인(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노후를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것은 분명 무리다. 일할 때와 비슷한 노후 생활을 하려면 기업 퇴직연금이나 민간 개인연금 등으로 개인이 노후대비를 따로 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자발적 임의가입 제도를 활용해 저소득층 전업주부 등 무소득 배우자의 연금수급권을 확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무소득 배우자의 국민연금 보험료 등에 대한 세제 지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생기는 당장의 세수 감소는 나중에 이들이 노인빈곤층으로 전락했을 때 지원되는 복지예산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