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성남시 모라토리엄의 후유증

지난 한 주 동안 이재명 성남시장만큼 언론의 조명을 한 몸에 받은 인물도 없다. 너무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과감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이 시장의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선언은 '빅 뉴스'였다. 4대강 사업 중 하나인 낙동강 47공구 공사를 보류하겠다고 한 김두관 경남도지사도,한나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안상수 의원도 모라토리엄 뉴스의 돌발성과 폭발성보다 약했다.

지난 12일 '판교특별회계 5200억원 채무지급유예 선언'이후를 되짚어 보면 이 시장은 모라토리엄의 심각성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오죽했으면 이 시장 스스로가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예상보다 지급유예 선언의 파장이 커 당혹스럽다"고 난감함을 표했겠는가. 짐작하건대 이 시장은 채무 실상을 시민에게 알리는 의무 이행 정도로 생각한 듯하다. 이 때문인지 이 시장은 지금 시민들의 엄중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성남시민들은 무엇보다 그의 문제 해결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이 시장은 5200억원 채무에 관한한 전혀 협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채권자 격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담당부처인 국토해양부,지방재정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를 만나 사전에 논의한 흔적이 전혀 없다. 이 시장은 "왜 협의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숨어서 해달라는 건가. 밀실에서 하라는 건가"라며 오히려 반문했다고 한다. 취임한 지 겨우 12일 만에 '못 갚겠다'고 한 것도 이상하지만 채권자들을 만나 채무상환 시기와 액수를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더 이상하다. 개인도 빚을 갚기 힘들면 채권자를 찾아가 읍소하는 게 다반사다. 시장이 자기 손엔 흙 안 묻히고 일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 시장은 또 96만 성남시민들에게 '빚쟁이 시민'이란 불명예를 안겼다. 이 시장은 채무 상황을 알린다는 의무감에만 충실했지,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상처입을 시민의 자존심은 미처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성남이 이제 전국적으로 거지도시로 알려졌다", "성남시민으로서 자긍심이 사라지고 자괴감에 빠졌다","부도난 성남에 사는 사람이라니.창피하다"는 시민반응이 이미 시청 게시판 등에 나돌고 있는 터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2위인 성남시가 전국 244개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배째라'고 나온 격이니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이 시장과 참모들이 모라토리엄의 의미와 후유증 등 시장 경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도 의심받고 있다. 모라토리엄은 단순히 나중에 빚을 갚을 테니 상환시기를 늦춰달라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모라토리엄은 시장(마켓)의 잔인한 보복을 부른다'는 점을 두려워한다. 한 나라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외국인 투자가 빠져 나가고 기업은 연쇄도산하며 국민들은 실업으로 고통받는다. 성남시도 모라토리엄의 메커니즘상 같은 처지에 놓일 게 뻔하다. 만약 이 시장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당장 허리를 굽히고,LH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을 테고,중앙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파장이 클지 몰랐다는 말도 안했을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시민운동과 인권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새내기 시장이다. 시민운동은 구호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은 구호만으로 수행할 수 없는 자리다. 빚을 못 갚겠다고 외치기 전에 뼈를 깎는 자체 구조조정안을 먼저 내놓아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다른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고기완 사회부장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