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한나라당 최고위원 당선 나경원 의원

"3위 당선은 차세대 정치인 인정…친이·친박 갈등 조정할 것"
정치적 중량감 달라졌지만 너무 앞서 나가는 건 경계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47 · 재선 · 서울 중구)은 그다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다. 대변인 시절에도 화려한 언변보다는 차분하고 냉철한 논평으로 승부했다.

어린 시절에도 별다른 '일탈'없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굳이 '사건'을 뽑자면 대학에 들어가서 남편인 김재호 의정부 지법 고양지원 부장판사를 만난 것 정도다.

대학 다니면서 연애한 것이 그나마 일탈이라고 부를 만하단다.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문해 각 언론사와 인터뷰를 할 때도 취미를 '아이와 놀기'라고 답했을 정도다. 그런 나 의원이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1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득표율 3위를 기록하며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그것도 자신의 힘으로.17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나 의원을 만났다. 전대 결과에 대해 무척 고무돼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 의원은 전대 과정을 얘기하면서 눈시울부터 붉혔다.

▼선거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늦게 출마선언을 해서 선거운동 기간이 열흘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마치 공짜 점심을 먹은 것처럼 말씀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국회에 오고 나서 고시 공부를 할 때보다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았어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대변인을 할 때도 밤잠 안 자고 일했고 토론회에 나갈 때마다 당의 대표 주자로 나선다는 생각에 정말 책임감을 갖고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모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경선에 나가라고 했다는 설도 있었는데.

"그런 게 네거티브 선거전의 대표적인 케이스 아닌가요. 저로서는 서울시장 경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경황이 없었고, 지역구 초선이고 최고위원에 나오고 싶지 않았어요. 또 나가면 그런 얘기가 나올 거라 어느 정도 예상도 했었죠. 그러나 당 안에서 제 역할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나가지 않고 몸보신만 하고 있는 것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

▼모두가 나 의원이 3위 한 것을 두고 놀랐는데,예상하셨나요. "거기까진 자신 없었어요. 사실 대의원 표는 '조직표'라고 할 만큼 기존 지지 인물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여론조사가 워낙 좋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 희망은 갖고 있었어요. 4등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하지만 선거라는 것을 해 보면 당시 후보자가 내세운 구호나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평가받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 당시의 시대 정신이 요구하는 인물인지,또 그 인물이 과거에 어떻게 활동했는지가 중요한 요인이 되는 거죠. 이번 선거를 자평해 본다면 제가 당의 차세대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

▼이번 경선으로 나 의원의 정치적 중량감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저는 너무 빨리 가는 것보다는 천천히 뚜벅뚜벅 걸어가자는 주의예요. 정치를 떠나서 세상만사가 빨리 나가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늦게까지 출마선언을 하지 않고 고민한 이유가 그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선은 일하는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18대 국회에 와서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제 6정조위원장 역할도 열심히 수행하고 미디어법도 처리하면서 책임감있게 일을 했어요. "

▼나 의원은 성공했지만 한나라당은 '쇄신'에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도부의 책임이 크죠. 한나라당은 현재 아마추어 여당이에요.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잖아요. 그렇다보니 당이 주도해서 정책을 만들고 이슈를 제시하기보다는 정부와 청와대가 계획한 국정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만 집중해요. 이젠 당이 앞장서서 민생과제를 챙겨야 합니다. 정당은 결국 국민들의 뜻을 모으는 도구예요. 민심을 반영하는 일에 당이 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악플 때문에 상처받지는 않습니까.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던데.

"최근까지도 인신 공격성 글들을 봤어요. 이제는 그러려니 하죠. 그래도 애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싫죠. 특히 우리 딸은 오히려 저보다 더 열심히 댓글들을 읽어요. 그리고는 저한테 와서 '엄마,인터넷에 그런 심한 사람이 있어요'라며 일러줘요. "

▼공직을 맡고 있는 남편이 선거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까.

"공무원이다보니 가급적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요. 거의 방관자적이죠. 선거에 나와 보니 남자 의원들은 부인들이 대부분 열심히 도와주고 최근엔 의원 아내를 돕는 남편도 많아졌더라고요. 우리 신랑은 여태까지 어떤 선거에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어요. 제가 최근에 전대 준비하면서 그런 걸로 조금 푸념을 했더니 전대 아침에 문자를 보내더라고요. 힘내라고요. 그래도 제가 미안한 게 많아요. "

▼오 시장이 "나 의원의 복지 공약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야 장애인의 가족 입장에서 복지공약을 생각하니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죠. 사실 사회가 그래요. 가장 약자의 기준에서 사회 제도를 만들면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 또한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생각해서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만들면 평범한 사람들이 짐을 옮길 때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거든요. 문턱을 없애면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놀 수 있고요. 제 딸을 걱정없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복지 제도가 만들어져야죠."

▼바쁘다 보면 아이들을 돌봐줄 시간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제 여동생이 많이 도와줘요. 아이들 옷처럼 필요한 물품을 대신 사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없긴 해요. 보통 오전 5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신문을 스크랩한 다음 조찬 모임에 나가는 것으로 일상을 시작해요. 요즘처럼 재 · 보궐 선거 등을 앞두고서는 하루에 차로 이동한 거리만 50㎞가 넘을 때도 있고요. "

▼재테크도 하십니까.

"거의 못하죠(웃음). 남편은 저보다 더 못하고요. 이런 태도는 경제신문과 안 맞을 텐데…(웃음). 결혼하고 나서 축의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다음부터는 절대 주식 안해요. 주식형 펀드도 제가 돈을 넣자마자 곤두박질치더라고요. 그냥 예금만 해요. "

▼최고위원 선거에 나오려면 기탁금 8000만원이 필요한데.

"동료 의원분들이 많이 후원해 주셨어요. 그리고 사실 전 선거에 돈 많이 안 써요. 지난번 서울시장 경선에 나설 때도 작은 쪽방에 선거 캠프를 차렸어요. 이번 전대에선 여론조사도 안했어요. 다른 캠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커닝하곤 했죠."

▼개헌과 공천개혁 등 당장 불거진 이슈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이번에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았어요. 사실 공천은 제도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어요. 다만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과정에서 왜곡된 거죠. 제도의 현실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개헌 문제는 현재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들고 나온 '분권형 대통령제'에 집중하기보다는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개헌의 방향성을 여러 갈래로 열어놔야지 '분권형 대통령제'만 언급하다보면 다양한 가능성의 창을 닫아놓는 셈이거든요. "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화합도 현안입니다.

"계파갈등을 조정하는 합리적인 조정자가 되고 싶어요. 사안의 본질로 판단하지 계파의 이익을 따지고 싶진 않아요. 사실 계파문제는 근본적으로 양측 모두 서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놔야 합니다. 친이계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표를 차기 대권 주자에서 제외시켜서도 안되고,마찬가지로 친박계 의원들도 대통령이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버려야죠."

박신영/이준혁 기자 nyusos@hankyung.com

'똑나대' 별명 가진 나경원 의원

서울행정법원 판사 출신인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4년 17대 비례대표의원을 지낸 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지역구(서울 중구)로 재선에 성공했다.

당 대변인과 정조위원장을 거쳤다. 2005년부터 한나라당 대변인 생활만 무려 3년을 하면서 대중성을 쌓았다. 대변인 시절 24시간 전화기를 켜놓고 기자들의 전화를 일일이 받아 '똑나대(똑부러진 나경원 대변인)'라는 별명을 얻었다. 10년 전 몸무게(본인은 비밀이라고 함)를 지금도 유지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장애아 딸을 둔 그는 의원이 되자마자 국회연구단체인 '장애아이 위 캔(We can)'을 만들어 장애아동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