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메이저, 선박 사들여 직접 운송…해운사 '불똥'
입력
수정
최대 수입 中 "가격 내려라"압박대우조선해양이 지난달 중순 40만DWT(총 적재량 기준 톤수)급 벌크선 3척을 주문받았을 때의 일이다. 두 가지가 이례적이었다. 우선 선박 규모가 달랐다. 대우조선조차 울트라급 벌크선(ULVC:ultra large bulk carrier)을 만들기는 처음이었다. 발주처가 '페이퍼 컴퍼니'를 앞세워 주문 사실을 가리려 했다는 점도 특이했다. 화주는 브라질 최대 철광석 업체인 발레로 밝혀졌는데 리오틴토 등 호주 경쟁업체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왜 발레가 전례 없던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브라질 발레 "벌크선 100척 확보" 직접 운송으로 비용 절감 나서
국내 조선업계 "가뭄에 단비"…중소해운사들 "고래 싸움에…"
◆광산업체들이 선박 직접 운영한다해답은 중국에 있었다. 중국 철강사들이 최대 구매처로 부상,값을 내리라고 하자 호주 광산업체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발레로선 운임 비용을 대폭 낮추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초대형 벌크선을 직접 운용, 철광석을 운반하면 운임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는 얘기다. 중국과 자원 메이저간 '고래 싸움'은 조선 · 해운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조선업체들로선 '가뭄에 단비'를 만났지만 중소 벌크선사들은 일감을 뺏길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철광석 광산업자들의 선대(船隊) 확장은 이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발레는 사우디아라비아 벨라로부터 30만1000DWT급 유조선 5척도 샀다. 척당 1억1600만달러쯤 하는 배들로 발레는 이들을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약 93억달러를 들여 이런 선박 20여 척을 확보했다. 장기운송계약을 맺고 있어 발레 내부 사정에 밝은 STX팬오션 관계자는 "발레가 100척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발레는 선박 확보에서 한술 더 떠 중국, 말레이시아 등지에 대형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철광석을 아시아에 미리 갖다 놓고,수요가 생길 때마다 꺼내 팔면 물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화주가 선박 운용에다 창고업까지 하는 셈이다. 호주의 리오틴토 역시 20만5000DWT급 규모 초대형 벌크선 8척을 한진중공업에 발주,선단 확보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철광석값 내려라"
전문가들은 "중국과 자원 메이저 간 싸움에서 힘의 균형이 중국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2억t의 철광석을 수입하는 등 최대 구매처로 부상한 중국이 광산업자들에게 가격 하락을 요구하고 있는 것.
특히 발레 등 브라질 업체들의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해운업 조사기관인 ICAP에 따르면 브라질 광산업체들이 CIF방식(운임을 수출업자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중국에 수출하는 철광석 가격은 t당 158달러(13일 스팟 가격)로 호주(151달러)보다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사들이 브라질 쪽에 호주 수준으로 값을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압박이 실효를 거두는 이유는 다층적이다. 중국 정부는 철광석 광산 확보를 위해 159억달러를 투자(한국광물자원공사 자료,작년 말 기준)하는 등 자급률을 높였다. 동시에 중소 철강업체들을 통폐합,'바잉 파워'를 끌어올리면서 기존 광산업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제철회사인 바오스틸은 산하 바오스틸해운을 통해 자국 조선사와 벌크선 9척의 건조계약을 체결하는 등 아예 광석을 직접 실어나를 계획까지 짜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은 시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철강업체 통 · 폐합 과정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철광석 수입량이 급감하자 벌크선 운임의 기준이 되는 BDI지수가 5월26일 4209포인트를 정점으로 이달 16일엔 1700까지 폭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4월만 해도 t당 180달러를 넘어섰던 철광석 가격이 100달러대까지 하락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중소 해운업체들 '일감 뺏길라'중국과 대형 자원업체들 간에 붙은 불은 엉뚱한 곳으로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소형 벌크선사들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벌크선 부문 3위인 STX팬오션 관계자는 "철강업체,광산업자들과 장기운송계약을 맺을 수 있는 대형 선사들만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중소형 벌크선사들의 구조조정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