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병 수렁'에 빠지나] (6) '돈먹는 하마' 건강보험…4조8000억 수혈 받고도 적자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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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통제불능 건강보험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전 국민 의료보험'을 '이달의 기록'으로 지난 15일 선정,나라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에 올렸다. 미국은 올해 3월에야 의료보험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한국은 이보다 21년이나 앞선 1989년 7월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를 열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 보장성 강화로 재정 악화…노인인구 늘고 의보수가 높아져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건강보험은 치유하기 어려운 중병을 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담뱃값의 일부를 건강증진기금 명목으로 떼어 건강보험에 집어넣는 것을 포함해 정부가 건강보험료 수입료액의 20%에 달하는 금액(작년 4조8100억원)을 예산으로 투입했는데도 건강보험은 지난해 32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는 적자폭이 1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건강보험의 과도한 혜택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작년에 낸 보험료는 16조원이었다. 1인당 월평균 납입 건강보험료는 2만7620원이었다.
이 돈에다 사업자(사용주)가 낸 10조원,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한 3조7000여억원,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 1조원 등 14조7000억원을 합치게 된다. 건강보험공단이 보험급여로 지난해 지급한 금액이 월 평균 4만9569원으로 가입자가 낸 돈의 180%에 달하는 이유다. 회사와 국가가 건강보험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부담하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건강보험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와 회사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건보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 적자가 내년에는 3조원,2012년 5조원,2013년 7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건강보험공단은 예상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건강보험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최근 10년간 한국의 국민의료비 증가율은 연 평균 5.2%였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한 보험급여는 이보다 훨씬 높은 13.93%의 연 평균 증가율(최근 10년간)을 보이고 있다. 적용을 받는 항목들이 늘어난데다 보험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쉽게 진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건복지부는 2013년까지 3조1000억원 규모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본인부담금 경감 등으로 6100억원의 건보 지출을 늘린 데 이어 올해는 심장 · 뇌혈관 질환자,결핵환자,중증화상환자의 본인부담률을 인하 해 65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특정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보장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며 "급여관리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가입자 부담 모두 늘어
건강보험 재정이 처음으로 문제가 된 것은 '직장 의료보험'과 '지역 의료보험'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통합한 2000년 7월 이후였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취약한 지역 의료보험이 합쳐진데다 건강보험 혜택도 늘어나면서 2001년 2조4088억원,2002년 7607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은 일종의 담배세인 '건강증진기금'부과였다.
덕분에 건보재정은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후 보험급여 지출이 늘어 건강보험 재정이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다. 2002년 13조8993억원이었던 보험급여(공단에서 지급한 의료비)가 2006년 21조4893억원으로 급증했다. 그해 건강보험 수지는 747억원 적자로 반전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7년부터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 범위'내에서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 지원액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건강보험은 차년도 예상수입액의 14%를 국고지원으로,6%를 건강증진기금(담배)으로 받고 있다. 보험료가 늘어나면 정부 지원도 늘어나는 구조다. 작년에만 5조원에 육박한 정부 지원을 더 늘리면 국가 재정 건전성에도 그만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강보험료 납입액도 꾸준히 늘어 보험료율(직장가입자 기준)은 2001년 3.40%에서 올해 5.33%로 높아졌다. 이 비율은 앞으로도 더 높아질 전망이다. ◆기금화 등 제도개선 필요
건보 재정의 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앞선 건강보험 제도를 유지하는데 사회 전체가 부담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말고 민간 의료보험 활용을 더 늘리는 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세부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적자 폭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감시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KDI가 최근 개최한 국가재정운용계획 복지분야 토론회에서는 건보의 정부 기금화 방안도 제시됐다. 건강보험 재정은 국회의 통제와 감시에서 벗어나 있어 방만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다한 의료비 지출을 부추기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완전한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로 변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의료 서비스의 양과 질에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진료비를 지급하는 포괄수가제는 현재 맹장수술 등 7개 대상에만 적용되고 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