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체육시간은 광합성 시간? '덩치만 큰 약골' 양산

강골 어린이 만들기
지난주 대부분의 초 · 중 · 고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부모들은 대학입시 열풍 때문에 성적 올리는데만 급급했지 자녀의 건강을 챙기는 데에는 정작 소홀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어린이의 저성장,시력저하,비만,여드름,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눈에 띄는 가시적인 건강 요소에는 많이 신경쓰지만 기초체력증진이나 인터넷(게임)중독 예방 등에 대해선 등한시하거나 무관심해 하는 경향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체격만 컸지 체력은 약골'이다"라는 말이 10여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다. 1993년에 대학입시에서,1997년엔 고등학교 입시에서 체력장 자체가 빠진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부에서는 날로 부실해져가는 학생 체력 저하에 위기감을 느끼고 지난해부터 학생건강체력평가시스템(PAPS)이라는 새로운 체력검사 방법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운동을 시키지 않고 학교 체육교육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강골' 어린이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체육시간이 '광합성'시간?

2004년부터 시작된 7차 교육과정에 따라 고교 1학년생은 모두 체육수업을 받지만 2학년부터는 예체능 과목 중 체육 대신 음악이나 미술을 선택해도 되기 때문에 운동을 꺼리는 학생들은 체육수업을 피한다. 더욱이 입시과열 풍토 때문에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체육시간은 실내수업으로 대체되기 일쑤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체육시간에 남학생은 축구나 농구라도 하지만,여학생은 잔디밭에 앉아 햇빛을 쬐며 수다를 떠는 '광합성'시간으로 활용된다.

이런 체육교육 부실의 여파는 20~30대 체력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올 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09 국민체력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30대는 2년 전과 비교해 제자리멀리뛰기는 16~17㎝ 감소했고,분당 윗몸일으키기 횟수는 2~3회 줄었으며,50m달리기 기록은 0.6~0.8초 느려졌다. '마린보이'박태환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꿀벅지'이상화의 올림픽 피겨스케이드 금메달 등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상에 비해 국민체력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약골체력으로 자란 어린이는 성인이 돼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고 지구력을 요하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전용관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팀이 40대 성인 남녀 1만5896명을 고교 시절 대입 체력장 점수와 현재의 건강검진결과를 비교한 분석한 결과 여성 중 체력장 급수가 낮았던 그룹(4~5등급)은 높았던 그룹(1~2등급)에 비해 혈당이 위험수치 이상일 확률이 2.3배 높았다. 몸에 좋은 고밀도지단백(HDL) 결합 콜레스테롤이 부족해 동맥경화가 될 확률은 2.0배 높았다. 학생 때 기초체력이 부실한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운동을 하지 않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성장부진과 학습장애도 운동이 열쇠

사춘기(15~18세)는 신체적 성숙이 완성되는 시기다. 16세 소년은 최대산소섭취량이 5세 어린이의 3배 이상이다. 남자의 경우 폐용량은 6세 때 1937㎖에서 16세 때 5685㎖로,심장 무게는 95g에서 258g으로,근육량은 7㎏에서 23㎏으로 증가한다. 10대에는 소아일 때보다 체중당 더 낮은 산소를 소비하며 더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다. 여자도 16세의 악력은 5세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다. 따라서 소아청소년기에 꾸준히 운동해서 기초체력을 다져놔야 성인이 돼서도 이를 바탕으로 강건한 생활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유전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50% 이상으로 절대적이라고 믿는 학자들이 있는 반면 노력만 하면 20% 이하이기 때문에 적절한 영양공급과 운동,스트레스 관리만으로 충분히 키를 키울 수 있다고 보는 의사들도 많다. 요즘 어린이들의 체력저하ㆍ성장부진ㆍ학습장애 문제는 영양부실보다는 운동량의 절대량 부족에서 온다. 운동을 하면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한다. 운동 도중보다 운동 30분 후에 가장 높은 분비량을 보이고 90분까지는 안정 시보다 높게 유지된다. 운동을 하면 열량이 소모되면서 인체가 남은 열량을 놓고 성장에 쓸까,저장해둘까 서로 가지려 경쟁하다가 성장을 자극하게 된다. 또 운동 시의 물리적 자극이 근육단백질의 파괴와 재합성을 촉진하면서 근육 증대와 균형있는 신체발달을 초래한다.

운동은 기억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운동은 관련 중추인 소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해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또 운동기능 향상에 따른 행동능력 발달은 인지능력 상승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달리기를 많이 한 쥐의 신경세포성장인자가 전혀 하지 않은 쥐보다 훨씬 많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침마다 운동을 한 어린이는 맑은 정신으로 학교수업에 빨리 몰입하며 발표도 잘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렇지 않은 어린이는 공부에 시동을 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어린이 학습능력저하의 주범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다스리는 데 약물치료나 정신과상담도 유용하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시켜 집중력을 높이는 게 좋다. 더욱이 방학 때라면 갑갑한 독서실이나 학원에 앉아 5시간 넘게 책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오히려 오후에 1~2시간 땀 흘리게 운동한 뒤 샤워하고 한시간 정도 낮잠을 잔 뒤 두세 시간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키를 크게 하는 운동과 영양섭취

운동에는 성장에 도움되는 것도 있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도 있다. 성장기엔 골격의 성장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동작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점프나 투기,강한 근육 또는 지구력 트레이닝 등은 좋지 않다. 역도 유도 마라톤 기계체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성장기는 신체기능이 예민하게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운동효과가 높다. 키를 키우는 데는 줄넘기 걷기 체조(스트레칭) 등 가벼운 운동이 좋다. 트렘블린은 탄성이 좋은 천 위에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관절에 미치는 몸무게의 하중이 적어 누구나 할 수 있다. 철봉이나 물구나무서기 역시 온종일 몸무게로 눌려 있던 성장판을 늘려줘 성장을 촉진한다. 다만 줄넘기는 딱딱한 바닥에서 무리하게 할 경우 정강이 위쪽뼈가 피로골절을 입고 성장판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피한다.

성장기에는 골격과 근육발달에 필요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체중 1㎏당 2~2.5g의 단백질이 필요하다. 지방을 통한 에너지섭취 비중은 전체 열량의 25~30%가 적당하다. 정어리 고등어 꽁치 등 등푸른 생선은 뇌발달에 도움을 준다. 칼슘은 하루에 1000㎎이 필요하다. 우유 100㎖에는 100㎎의 칼슘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우유와 치즈 요구르트 등 칼슘보급에 좋은 유제품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적혈구의 구성 성분인 철분은 성장에 따른 혈액량 증가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이므로 기름기 적은 붉은 생선이나 육류,계란 등을 통해 기본량을 채우도록 한다.

어린이에게 콜라와 커피는 금물이다. 이들 음료에 함유된 인산성분과 카페인 등은 칼슘의 흡수를 방해하고 오히려 배출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과일 채소 우유의 권장섭취량을 충족하는 학생은 35% 정도였다. 하지만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을 초과 섭취하는 학생은 67%에 달해 부모의 엄격한 식생활관리가 요구된다.

이와 함께 어린이들은 방학 동안 인터넷(게임)에 중독되기 쉽다. 지난해 한국정보화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중독자 191만3000명 가운데 아동ㆍ청소년은 93만8000명으로 49%나 됐다. 부모의 지도감독이 소홀할수록 어린이는 인터넷 중독에 취약하다. 방학 내내 인터넷,게임과 시름하다보면 학습의욕을 상실하고,개학 후 학교생활 적응력이 현저히 떨어지며,대인관계가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중독상태임을 깨닫게 하고 인터넷 사용시간을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해야 한다. 무조건 강압하면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독서,운동,등산,대화 등 다른 활동을 늘림으로써 컴퓨터 사용시간을 조금씩 줄여 나가야 한다. 컴퓨터에 깔린 게임을 모두 지우고 게임 CD나 관련 잡지도 아까워하지 말고 모두 버린다. 컴퓨터 사용시간을 주당 몇 회로 정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메일 검색은 정해진 시간에 하도록 권장한다.

컴퓨터를 아이방에서 거실로 옮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방학 동안 아이들을 학원으로만 내몰 게 아니라 적절히 운동시키고 컴퓨터와 멀어지게 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는 해답이 될 수 있다. 도움말=박수성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 서지영 을지대 강남을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문진웅 일산튼튼병원 원장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