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토크빌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英빈민법 일하지않는 풍토 조장
과도한 사회복지 부작용 경계를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통해 미국 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19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알렉시 토크빌이 영국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한 점수를 주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빈민법이 사회의 건전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나태와 게으름이 인간의 본성이며 따라서 어떤 절박한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 한 인간은 노동을 회피하게 돼 있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동기 중 하나는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생존'이라는 원초적 본능이었다. 문제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토크빌은 빈민의 생존을 법적인 권리로서 보장하는 영국의 빈민법은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노동의 동기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결론지었던 것이다.

사회복지 발달사를 살펴보면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과 없는 빈민을 정책적으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1536년 영국의 튜더 빈민법이 최초였다. 장애인,과부,노인,어린이는 무조건적으로 구제하되 신체 건장한 빈민들에게는 노동 의무를 강제적으로 규정했다. 후자에 대해서는 공공사업 등을 통해 일을 배정하고 만약 이를 기피하면 일정 기간 교화소에 수용해 강도 높은 노동을 강제했던 것이다. 이후 노동 능력 유무를 기준으로 하는 차별적 정책은 근대 서양 복지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들에 대한 복지 지원은 당사자의 구직활동과 밀접하게 연계돼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1996년 실업급여를 폐지하고 구직급여를 신설했는데 이는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실업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급여를 받으려면 2주에 한 번 구직센터에 가서 구직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또한 노동 능력이 있는 공적부조 수혜 대상자에게 구직활동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96년 클린턴 정부 시절 미성년 자녀를 가진 가족에 대한 지원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한시적 빈민지원제도로 대체한 것이다. 새 제도는 수급기간을 5년으로 제한했고 수혜 2년 후부터 일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발전시켜야 할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노동 능력이 있는 수급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유인할 만한 체계가 불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열심히 일하는 근로 빈민이 일을 하지 않는 기초생보 수급자보다 더욱 열악한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형평성에도 어긋나지만 노동 능력이 있는 수급자들이 수급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일을 하지 않는 모순을 낳는다.

근로 빈민의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대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전체 근로자의 3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비롯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기본적인 생계를 꾸리지 못하는 저임금 근로자가 수백만명에 이른다.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해도 정부가 기초생보 수급자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수급자 대열에 끼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토크빌이 본 19세기 유럽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정부는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고 최저임금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이뤄져야 할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나은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복지제도를 체계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이다.

허구생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