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비밀 vs 직장선택…'전직금지' 법적 효력은

동종업계 2~3년 이직 금지 계약
기업 "기술유출 막기 위해 당연"
근로자들 "보상없고 너무 길어"
법원, 퇴직 경위·전 지위도 따져

기업간 인력 스카우트 갈등이 잇달아 불거지고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벤처기업 사이에서도 이공계 기술인력들의 경쟁업체 이직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줄을 잇고 있다. 기업들은 "회사에서 얻은 기술을 갖고 경쟁회사로 가면 회사는 큰 손해를 입게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를 옮기는 임직원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항변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의 한 판사는 "일반 영업직 등을 대상으로 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은 많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비율도 낮지만,기술인력 쪽에서는 경우 신청도 많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영업비밀 보호 vs 직업 선택의 자유기업의 기술은 부정경쟁방지법 등 법률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기업들은 또 기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보통 2~3년간 동종업계로 이직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한다. 많은 인력과 자본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경쟁 기업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약정이 언제든 회사가 직원의 발목을 잡는 구실이 될 수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이모씨(30)는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지난달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S사로 이직했다. 그는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약정과 상관없이 이직을 많이 한다"며 "그러나 언제든지 전 회사가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전직 제한은 인정돼야 하지만 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전직금지 기간이 과도하게 길 경우 경쟁을 제한하고 기술 인력들의 전직 기회가 축소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영회 변리사협회 부회장은 "요즘같이 기술 진보가 빠른 시대에 2~3년간 집에서 쉬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대부분의 회사들은 합당한 보상도 없이 이직을 금지한다"고 비판했다. ◆법원의 판단은



전직을 금지하는 기간 · 조건에 대해 부정경쟁방지법 등 법률의 일률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법원이 개인과 회사의 약정이 합당한지 개별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법원은 전직금지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회사의 이익과 직원의 퇴직 전 지위를 고려한다. 전 직장의 자료 등을 빼내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의 형사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든 지식이나 노하우를 판단하는 일은 어렵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법원의 판단도 엇갈린다. 지난 3월 광주지방법원은 삼성LED가 경쟁사의 용역회사에 취업한 직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해대상 이익과 기술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전 직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1년간 전직금지 결정을 내렸다. 반면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김영편입학원이 경쟁학원으로 옮긴 강사 2명을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에서 강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강사들이 학원에서 근무하며 얻은 지식은 회사의 고유한 이익이라기보다는 강사들 스스로 얻은 일반적인 지식,경험 등으로 볼 수 있다"며 가처분을 기각했다. 법원은 또 전직금지 기간 · 지역 및 대상 직종,근로자에 대한 보상의 유무,근로자의 퇴직경위 등을 판단한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원일 변호사는 "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 법원의 개별적 판단에 맡기는 실정"이라며 "다만 우리 법원도 가처분 결정을 할 때 회사가 전직 금지의 대가로 직원에게 보상을 했는지 여부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