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정위 앞세워 대기업 전방위 압박

鄭총리 "납품단가 조사"…재계 "지나친 단순논리"
양극화 해소를 집권 후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가 '대기업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21일 제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포럼 특강을 통해 "국제 경쟁력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가 갑(甲) · 을(乙)의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최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나 중소기업에까지 골고루 퍼지지 않아 체감경기가 양극화하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이 20% 정도 올랐지만 중소기업 납품 단가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전경련 등이 합동으로 대 · 중소기업 간 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실태 조사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박상용 사무처장을 단장으로 각 부처,경제단체,민간 전문가 등으로 '대 · 중소기업 거래질서 확립 조사단'을 꾸렸다. 대기업 부당 행위 실태를 일제히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납품 단가 인하 강요,기술의 부당한 탈취,상습적인 하도급법 위반 여부 등이 조사 대상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관계부처가 망라돼 대기업의 납품 단가,기술 탈취 문제 등의 실태를 조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조사 결과 부당 행위 혐의가 있는 대기업과 업종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현장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최근 경제 회복세가 중소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건강하고 생산적인 협력관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위 정책 당국자들의 이 같은 발언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은 고(高)환율 정책과 중소기업의 희생을 토대로 이룬 것인 만큼 이제는 납품 단가 인상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7 · 28 재 · 보궐선거를 앞두고 양극화 논란이 끊이지 않자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박관념이 '대기업 조이기'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은 차갑다. 대 · 중소기업 간 관계를 시장 논리가 아닌 강자와 약자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고,선악(善惡)의 논리로 접근하면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