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통보 없이 주문 끊고…건설사, 단가 후려치기 심해"

중소기업 불만은…
최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강한 불만을 갖게 된 배경에는 경영실적 호조가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편향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 따른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일부 대기업이 어닝 서프라이즈에 해당하는 경영실적을 발표하면서도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업황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 분야가 대표적이다. 대기업 계열사인 H사는 지난해 토목공사,철골공사 등 4개 공사의 하도급을 주면서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해 4곳의 중소 건설사를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H사는 정당한 이유없이 최저가 입찰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정했다. 중소 건설사들은 이윤을 거의 포기하고 최저가 낙찰을 받은 상황에서 또 가격이 떨어지자 손실을 봐야 할 처지에 몰렸다. 결국 이들 업체도 레미콘 회사 등 또 다른 하청업체에 납품 단가 인하를 통보해야 했다. 대기업들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는 이처럼 1차 협력업체가 다시 2차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하향 전달된다. 그렇다 보니 열악한 소기업일수록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5%의 납품 단가를 요구하면 3,4차 업체들은 최고 15~20%의 납품 단가를 낮춰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몰린다"고 말했다.

단가 인하 요구 외에 일방적 추가 작업(공급) 지시,계약 보증 기간이나 하자보수 보증 비율의 과도한 설정,납품 대금 지연이자 미지급 등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들도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한 대기업은 경기 회복기를 맞아 대규모 하청을 주었다가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자 갑자기 공급 물량을 대폭 줄였다"며 "사전 통보도 없이 주문을 끊고 원 · 부자재마저 인수하지 않아 자금 회전에 차질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의견을 경청하는 대기업이 많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납품 단가 결정 방법에 대해 협의 기회는 주어졌으나 불충분하다'는 응답이 38.9%로 나타났으며 34.7%는 '아예 협의 기회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상호 충분히 협의 후 단가를 결정한다'는 응답은 26.4%에 그쳤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식재산권 탈취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최근 경영 애로사항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기밀 유출을 꼽았다. 사내 기술 유출 관계자가 '대기업 등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답은 23.5%에 달했다. 퇴직사원(62.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에 기술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또는 공동으로 입찰에 나서자며 특허를 요구한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주장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