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비디오 아트 거장 '쌩얼'을 본다

나의 사랑,백남준 | 구보타 시게코·남정호 지음 | 이순 | 376쪽 | 1만5000원
1960년대 관객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른 후 샴푸를 끼얹어 머리를 감기는 등의 기행적인 공연으로 스스로를 '황색 재앙'이라고 불렀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그러나 그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지인 구보타 시게코씨는 "그는 재능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천재였고 철학자인 동시에 천진난만한 아이였다"고 회고한다.

《나의 사랑,백남준》은 2006년 타계한 고인을 40여 년간 지켜본 구보타씨가 남편의 인생과 예술세계를 담아낸 책이다. 유럽과 일본,뉴욕에선 창의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얻었던 그가 정작 고국에선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뭍어난다. 이 책은 백남준이 허무주의적 성향의 예술행동주의 운동인 '플렉서스'에 매료됐다가 이후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의 개척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논란이 일었던 사건들의 비화와 인간 백남준의 맨얼굴도 소개한다.

1975년 7월14일 워싱턴 스퀘어파크 근처의 한 허름한 공연장에서 구보타씨는 사타구니에 붓을 꽂은 채 쭈그리고 앉아 붉은색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구보타씨는 이날의 '버자이너 페인팅' 공연 기획자는 자신이 아니라 백남준이었음을 고백한다. 남성으로서는 은밀한 곳에 붓을 꽂을 수 없어 그녀에게 이같은 전위 공연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가수 존 레넌의 부인이자 전위예술가였던 오노 요코조차 "게이샤나 할 짓"이라고 혹평했던 이 공연은 백남준에 대한 구보타씨의 사랑 때문에 가능했던 셈이다.

백남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TV부처'의 탄생 과정도 재미있다. 1972년 일본에 사는 형들로부터 1만 달러를 얻어온 백남준은 뉴욕에서 사바 세계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한 불상을 산다. 2년 후 그는 가부좌를 한 불상 맞은편에 텔레비전을 놓고 다시 그 뒤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 뉴욕 개인전에 내놓는다. 부처가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장면을 연출한 것.저자는 "평론가들은 동양의 선(禪)과 서양의 테크놀로지가 만난 기념비적인 비디오 아트의 탄생이라며 열광했다"고 말한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