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2000년 전 '작업의 정석' 지금 써먹어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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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 오비디우스 지음 | 김원익 옮김'여자의 최측근을 활용하라.선물과 편지를 자주 보내라.작업 걸 시점을 잘 선택하라.술자리를 이용하라.아낌없이 칭찬하라.무조건 약속하라.때로는 거짓말도 필요하다. 거짓 눈물을 흘려라.작전상 후퇴도 필요하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라.친구를 조심하라.변신의 귀재가 되라.'
| 에버리치홀딩스 | 336쪽 | 1만6000원
선물 공세ㆍ거짓 눈물ㆍ타이밍…로마 시인이 말하는 연애 기술
잘 나가는 연애 전문가의 말이 아니다. 2000년 전의 로마 시인이 들려주는 연애의 기술,작업의 정석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삶의 환경이 급변했어도 남녀의 사랑과 심리를 지배하는 원칙은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남녀가 사랑을 얻고 지키고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연애 지침서다. 기원전 43년 이탈리아 술모나의 기사 가문에서 태어난 오비디우스는 타고난 로맨티스트이자 사랑의 시인이었다. 따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던 원로원직을 포기하고 작품에 전념했던 그는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 자신들을 버리거나 떠난 남편이나 애인에게 보내는 가상의 연애편지를 모은 《여걸들의 서한》을 비롯해 여성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담은 《사랑의 노래》《여성의 얼굴화장법》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세계의 탄생으로부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할 때까지를 아우르는 15권의 대작 《변신 이야기》와 《로마의 축제일》도 그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얼마나 천착했는지 보여준다. 신화나 축제 이야기가 사랑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 · 로마 신화의 거의 모든 내용이 신과 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 이야기요,축제 또한 사랑 이야기를 빼면 재미 없기 때문이다.
이 책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은 그가 자신의 경험과 신화를 토대로 쓴 《사랑의 기술》(전3권)과 《사랑의 치유》를 한 데 모은 것이다. 《사랑의 기술》 1권은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는 기술,2권은 그렇게 얻은 사랑을 지키는 기술,3권은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얻는 기술을 알려준다. 또 《사랑의 치유》에서는 사랑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 열병으로부터 벗어나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이 과정에서 당시 그리스 · 로마인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했던 신화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이 때문에 신화연구가인 번역자는 카라바조 · 들라크루아 · 루벤스 등 대가들이 신화의 내용을 그린 명화 83점과 함께 관련되는 이야기와 시대 상황 등을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오비디우스는 책의 첫머리에서 "햇병아리 신병으로 에로스의 군대에 갓 입대한 사람이라면 우선 사랑의 대상을 물색해야 한다"며 로마 시내의 유명한 회랑과 극장,경마장,검투장,국가 행사,개선 행렬,파티 등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소개한다. 또 점찍어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렇게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여자든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라.그런 다음 낚시를 던지면 분명 여자들을 낚을 수 있다. 봄에 새들이 노래 부르기는 그만 둘 수는 있다. 여름에 매미가 울기를 그칠 수는 있다. 하지만 젊은 남자가 끈질기게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여자는 없다.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외모에 신경 쓰기보다 교양을 쌓고 부드럽게 대할 것,노예처럼 굴고 아낌 없이 선물할 것,시를 지어 보내고 인정하고 칭찬할 것,여자와의 일을 떠벌리지 말고 질투심을 유도할 것,신체의 단점을 들추지 말 것을 강조한다.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장은 혼자서 은밀히 해야 하고 신체의 단점을 감춰야 한다. 노래와 시와 춤을 겸비하고 남자들의 애를 태우되 절대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거만하거나 쉽게 허락해서도 안 된다. 남자의 라이벌을 활용하고,친구들을 조심하며 쉽게 믿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사랑의 열병은 초기에 잡아야 한다며 여자가 보낸 묵은 편지를 꺼내 읽지 말고 여자와 추억이깃든 곳은 무조건 피하라고 강조한다.
남녀의 연애심리와 갈등을 인간의 일상사나 동식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그리스 ·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버무려가며 풀어내는 솜씨가 절묘하다. 번역자는 "오비디우스는 아마 프로이트나 융 등 현대의 심리학자들보다 훨씬 앞서 신화를 통해 인간심리를 설명한 최초의 시인으로 기록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