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지재권관리회사의 성공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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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민간조직과 관계 정립하고"조지프 슘페터를 읽어라."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오스트리아 태생의 경제학자 슘페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대규모 경기 부양 정책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자 경제난 해소를 위해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고 민간 부분의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슘페터는 혁신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산업·학계 아우를 CEO 절실
첫째 금융 지원이다. 1911년 출간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슘페터는 경제를 정태적으로 파악하는 당시 주류학계의 시각을 비판했다. 대신 주기적으로 이노베이션이 일어나는 동태적인 과정으로 이해했다. 단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혁신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인은 경제 발전의 주변인이 아니라 핵심 주역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둘째 혁신 친화적인 문화다. 《자본주의,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슘페터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 내에서 시장경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동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사회 저변에 반혁신 문화가 싹트기 때문이다. 비평을 남발하며 여론을 주도하는 식자층이 혁신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기업가 정신을 비난한다는 것도 다른 이유다.
공식 출범을 준비 중인 창의자본주식회사(지식재산관리회사)는 슘페터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자 한다.
첫째 과학 기술인들에게 금융 지원을 하려고 한다. 모든 절차가 계획대로 이뤄질 경우 창의자본은 민 · 관 공동출자 형태로 최대 5000억원의 자본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가지고 과학 기술인들로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특허를 매입한 뒤 패키징을 거쳐 기업들에 제공하거나 판매하고자 한다. 창출되는 수익은 다시 과학 기술계에 투자할 계획이다. 둘째 이노베이션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고자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방과학연구소와 KAIST를 설립하며 과학입국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공계를 업신여기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창의자본은 이런 문화를 불식시킬 것이다. 형편없이 저평가되거나 무시돼온 신기술과 발명이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해서 "이공계야말로 성공의 가도"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물론 창의자본주식회사의 성공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첫째 유사 조직들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은 이미 그룹 차원에서 특허 관리를 하고 있다. 서강대 등 대학들은 대학 부설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했다. 창의자본은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힘을 한 데 모아 외국 기업들의 특허 소송 공세와 국내 지식재산권 선점 시도를 막아내는 한편 해외 지재권 시장에 진출,국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둘째 능력 있는 최고경영자(CEO)를 확보해야 한다. CEO는 무엇보다 지식 재산 사업의 사업모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 과학기술인,변호사,변리사,금융인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거느리고 우수한 아이디어와 발명,특허 등을 적정 가격에 사들이는 한편 확보된 지식재산들을 포트폴리오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CEO는 사회 다방면의 인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창의자본을 정부와 경제계,그리고 학계를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창의자본의 설립과 운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밖으로는 경쟁국가들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고 안으로는 노동인구 감소와 3D 업종 기피,그리고 고임금이라는 3중고를 떠안고 있는 우리 경제에 있어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창의자본주식회사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윤계섭 서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