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원 안받아" 콧대 높아진 자문사

'자문형 랩'에 투자자 몰리자
가입한도 확대 등 문턱 높여
일부는 자산가와 직접 계약도
한 증권사 도곡지점에 근무하는 프라이빗뱅커(PB) A씨는 최근 자문사와 직접 계약하고 싶다는 고객을 잘나가는 자문사에 소개해줬다 무안을 당했다. 5억원의 투자금이 적다는 이유를 들어 자문사가 고객과의 일임계약 체결을 거절했기 때문.부랴부랴 고객 2명을 더 끌어들여 총 10억원을 만들고서야 자문사로부터 가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A씨는 "3억원이면 일임계약을 맺던 자문사가 5억원의 거금을 마다해 자문형 랩이 뜬 이후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문사들의 인기가 높아진 반면 공격적인 투자 행태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집중투자로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은 만큼 유사시 주가 하락폭도 클 것이란 우려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높아지는 양상이다.

◆자문사 직접 찾는 자산가 늘어증권사에서 가입하는 자문형 랩 대신 직접 자문사와 계약하려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권 PB점포 등에는 자문사에 5억~10억원 이상을 투자하려는 자산가의 상담이 잇따르고 있다. 한 증권사 압구정지점의 PB B씨는 "이달 들어서만 20여명이 좋은 자문사를 알려달라고 요청해와 계약을 주선해 줬다"며 "올 들어 지속된 박스권 장세에서도 자문형 랩이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내자 의구심을 갖던 자산가들도 이제 능력이 검증됐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명 자문사에 돈을 맡기는 일 자체가 만만찮은 경우도 있어 볼멘소리가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익률이 좋은 한 자문사는 예전에 3억원이면 가입이 됐는데 요새는 5억원은 있어야 받아준다"며 "그나마 자산가가 많은 강남권에서는 가입할 수 있지만 강북 지점 등에서는 가입이 안 돼 PB들의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랩상품 안 하는 자문사도 많아이처럼 자문사들의 콧대가 높아졌지만 자문형 랩을 기피하는 자문사도 있다.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이 운영하는 H자문사의 경우 자문형 랩을 하지 않고 자산가들과 직접 계약만 하고 있다. 증권사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면 투자 원칙이 퇴색될 수 있는 데다 자문수수료도 크게 차이 난다는 이유에서다.

자문형 랩은 1억원 이상 가입시 투자액의 0.5~3% 수수료를 증권사와 자문사가 나눠 갖지만 자문사가 고객과 직접 계약을 맺으면 최소 3억원의 투자금 중 1% 정도를 자문사가 다 가져간다. 한 자문사 관계자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본업인데 랩을 통해 다수에게 자문하면 펀드와 차이가 없어지기 때문에 자문형 랩을 할 생각이 없다"고 설명했다.

가치투자 전략으로 이름이 알려진 VIP투자자문의 김민국 대표도 "가치주에 장기 투자하면 연 평균 15% 수익을 꾸준히 낼 수 있어 투자 스타일을 바꿀 수도 있는 자문형 랩을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또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자문형 랩처럼 집중 투자하는 방식은 너무 공격적이라 위험이 크다"며 "앞으로 자문형 랩을 내놓더라도 자문사보다는 자산운용사로부터 자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보미/강현우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