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월가 영욕의 산증인 모리스 그린버그 前 AIG회장

"美 금융개혁법 마련해도 근본적 위기 막는 것은 불가능"
대공황 이후 80년 만의 최대 개혁이라는 미국의 금융개혁법안이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서명 절차까지 마침으로써 완전히 마무리됐다. 이제 금융위기는 재발하지 않을 것인가.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변한 환경에 맞춰 어떤 경영 방식을 선보이며 발전해갈까.

미국 금융계의 원로인 모리스 그린버그 전 AIG 회장(85)은 "미국의 금융개혁법은 금융사 관행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파생상품 투자를 막는 볼커 룰의 방향은 맞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금융개혁법을 마련했다고 또 다른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며 의문을 표시하면서 "금융당국이 법만 믿고 팔짱을 끼고 있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내놨다.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의 몰락을 지켜보며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이가 그린버그 전 회장이다. 40년 동안 혼신을 기울여 쌓아 올린 성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마하의 현인'인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과 견줄 정도의 금융인으로 꼽혔기에 그의 충격은 더욱 컸다.

지난 22일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에 있는 투자회사 CV스타 사무실에서 월가의 노(老)금융인에게서 AIG의 좌초 과정과 금융개혁법 이후의 미국 경제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금융개혁법안이 상 · 하원의 심의 의결을 거쳤고,오바마 대통령의 서명 절차까지 끝났습니다. 이 법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볼커 룰(월가 금융사들로 하여금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한 자기자본 거래를 못하도록 하는 규제)을 담은 금융개혁법은 금융사 관행에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입니다. 예금을 받는 금융사는 자기자본 거래는 물론 파생상품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볼커 룰의 방향은 맞다고 봅니다. "

▶80년 만의 최대라는 이번 금융개혁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은데요.

"금융개혁법을 마련했다고 또 다른 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시장은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불가측성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금융위기의 원인과 양태가 항상 다르지요. 금융 개혁을 했다고 당국이 팔짱을 끼고 있으면 금융사들이 규제가 덜한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항상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생기게 마련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도 그래서 빚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금융감독당국이 미연에 이런 모든 변수를 생각할 수 있으면 모를까,근본적으로 위기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미국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기회복을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회복 속도가 기대했던 것보다 무척 느린 편입니다. 2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요. 고용 시장이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고,기업인들 사이에 증세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면 채용을 하지 않고 투자도 꺼리게 되지요. 단시일 내 더블딥이 빚어지지는 않겠지만,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

▶지금 미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랄까,도전으로는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높은 실업률과 정체된 성장,그리고 디플레이션이겠지요. 경제가 성장을 못하면 경제 주체들의 씀씀이도 당연히 줄게 됩니다. 사람들은 내일을 걱정하면서 소비하길 꺼리게 되지요. 그게 바로 디플레이션으로 가는 길입니다. 당장은 성장 위주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 경쟁력을 잃어가는 데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분야별로 차이가 있겠지요. 기술 분야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쪽에서 보면 세계 최고의 의사들을 보유하고 있고,환경 측면에서도 앞장서 왔다고 평가합니다. 녹색 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국민에게 잘 알려왔다고 봅니다. 경쟁력으로 따지면 미국이 상당 부문에서 여전히 우위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

▶AIG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을 것 같습니다. AIG는 파생상품 거래에 따른 손실로 망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금융상품 부문을 이끌었던 조지프 카사노 전 사장은 정부의 강압에 의한 인위적인 거래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그렇게 큰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당시 AIG는 지급불능이 아닌 유동성 문제를 겪었습니다. 다른 월가 금융회사와 마찬가지였지요.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것은 거래가 중단된 탓에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실제 가치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CDO 부도 위험을 막기 위해 보험을 든 월가 금융사들이 담보를 요구해왔습니다. 가장 집요하게 돈을 요구한 게 골드만삭스였습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담보를 쌓다 보면 유동성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정부가 준 구제금융 자금도 똑같은 과정을 통해 월가 금융사에 흘러들어갔습니다. 월가 금융사를 돕기 위해 AIG를 희생시켰다고 보는 이유지요. (화난 표정을 지으면서) 누가 봐도 구제금융 조건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6월30일자 뉴욕 타임스 1면에 난,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읽어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경영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래도 주주로서 회사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요.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말인가요.

"(금융위기 직전 상황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2005년 AIG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날 때까지 회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그는 세 차례 반복해 강조했다)"

▶AIG가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진 책임을 누가 져야 한단 말인가요.

"당시 금융시스템 붕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구제금융을 밀어붙인 미국 재무부와 뉴욕연방은행이 져야겠지요. "

▶AIG가 언제쯤 정상화될까요.

"(시장 금리보다 훨씬 높은 구제금융 금리를 염두에 둔 듯)현재와 같은 징벌적이고 가혹한 구제금융으로는 정상화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회사를 정상화시키길 원한다면 당연히 구제금융 조건을 적절하게 바꿔야 합니다. "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지 요즘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시죠.

"사업에 뛰어들려면 먼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규율을 배워야 하고,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

▶한때 한 · 미재계회의 미국 측 회장을 맡은 지한파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게다가 6 · 25전쟁 참전 용사로서 한국에 대한 감정이 남다르겠습니다.

"1951년 비행기를 타고 10군단 사령부와 속초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조종사가 아니고 부대 책임자(대위)였습니다. 겨울에 바람이 많이 불면 속초에 착륙하지 못하고 기지로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전쟁 폐허에서 경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봤으니 놀랄 수밖에요.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교육열이 뜨겁고 자부심이 강해 열심히 일하는 것 같습니다. 우수한 인적 자원이 없었으면 그런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1월 서울에서 열립니다. 어떤 의제들을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까요. "나라마다 생각이 다르고 전략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 조정하는 장으로서 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개혁과 무역 불균형 문제가 논의될 수 있지만,무엇보다 자유무역 원칙을 공고히 해야 합니다. 경제 회복이 취약한 가운데 무역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경제는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습니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