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음색 팔레트…'피아노의 전설' 루푸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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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라두 루푸 10월31일 첫 내한공연랍비를 연상시키는 짙은 턱수염과 고풍스러운 파데레프스키 의자,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신선과 같은 고고함과 복음을 전파하는 베드로에 비견할 만한 숭고함….
색채향연에 비견될 음악구조
슈베르트의 마지막 혼 담긴 '피아노 소나타 D.960' 선사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65)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라고는 그가 남긴 한정된 레코딩 외에 거의 없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을 한결같이 음악에 헌신해 온 루푸지만,그의 회중시계는 아직도 그가 세상에 이름을 내보이기 이전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그는 언론의 관심과 청중의 호기심,일체의 상업적인 방법들과 거리를 둔 채 오직 자신의 음악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정원사로서의 임무에만 충실하다. 초고속 시대의 관점에서 이런 그의 아집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개 안에서 오랜 세월 묵묵히 생성돼온 진주가 비로소 햇빛을 만났을 때의 그 경이로운 천연색을 우리가 진귀한 보석이라고 말하듯,그의 위대한 피아노 예술 경지 또한 진주가 겪은 인고의 세월과 가치에 진배 아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음량은 크지 않지만 손 끝에서 전해지는 음색의 팔레트는 열대 바다의 색채 향연에 비견할 만큼 명징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경이로운 시적 상상력은 풀 HD 화면을 보는 듯 생생하고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 옛날 국내에서 라이선스 음반 산업이 클래식 시장을 주도할 당시,애호가들 사이에서 루푸의 슈베르트를 듣고 어떻게 이런 피아노 음색과 터치가 가능할까라는 말들이 오가곤 했다. 전형적인 낭만주의 피아니즘의 색채만큼 화려하거나 강렬하지는 않지만,지적이고 신비로우며 투명하되 무게감 있는 음색의 팔레트가 자아내는 고급스러움이란!이렇듯 처연한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발산하기에 그는 메이저급 아티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컬트적인 숭배의 대상이 돼 왔다. 그만의 색채와 터치,독특한 음악의 구조는 버뮤다 해역에서 발견된 옛 스페인 함선에 담긴 보물과도 같다.
1945년 11월30일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네이가우스 부자(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프 부닌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사사하며 러시아 피아니즘의 찬연한 리리시즘을 물려받은 마지막 계승자로서 권위의 봉인을 받았다. 그는 1966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과 1969년 리즈 콩쿠르 우승을 통해 젊은 피아니스트의 총아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하이든,베토벤,모차르트,슈베르트,브람스와 같은 독일 레퍼토리에 한정해 깊은 인식의 샘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정경화와의 리사이틀 앨범(DECCA)으로 우리에게 친숙했지만,그 거리감은 결코 줄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오는 10월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첫 내한 공연은 어떤 연주회보다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11월3일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지휘 정명훈)과 베토벤 협주곡 4번 협연 스케줄도 잡혀 있다고 한다. 그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1부 야나체크의 '안개 속에서'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2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D.960'.오직 슈베르트의 밤으로 꾸며지길 바라는 애호가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길 법도 하지만,이들 레퍼토리는 루푸가 가장 즐겨하는 작품인 만큼 그의 신비로운 피아니즘의 요체를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연주에 거는 기대가 크다. 머레이 페라이어,안드라스 시프와 더불어 현대 슈베르트 해석의 3인방으로 불리는 그가 또 어떤 방랑자의 발걸음과 고뇌의 순간을 창조해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영상으로 옮겨온 화면들로부터 예술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듯이,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루푸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어떤 황홀의 순간을 그려낼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2010년 서울의 가을은 루푸의 피아노 선율 덕분에 황금빛으로 물들 게 분명하다.
박제성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