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 8000억 시장 '짝퉁과의 전쟁'

가짜 만들어 10% 싸게 시중 유통
2~3년새 위조 급증…지자체 손실
위조방지 홀로그램 부착 회의도
지난해 8월 대구지방경찰청은 전국 최대 규모의 가짜 쓰레기 종량제 봉투 제조일당을 적발했다. 한모씨(40) 등 5명은 2007년 무허가 공장을 차리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종량제 봉투 210만여장을 위조해 대형 소매점과 슈퍼마켓 등에 12억원어치를 유통시켰다. 이들은 동판 제작과 필름 제작,비닐인쇄 등으로 역할을 분담했으며 이탈리아에서 바코드 인쇄기계를 들여오는 등 전문가들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봉투를 정교하게 위조했다.

이들이 적발된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인천 연수경찰서도 가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시중에 유통시키려 한 혐의(사기미수 등)로 김모씨(41)를 구속하고 오모씨(39)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인천시 남동구 S할인마트에 남동구청장 명의가 위조된 쓰레기 봉투 700장(시가 400만원)을 190만원에 판매하려 했다. 환경부와 지자체들이 가짜 종량제 봉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루이비통,샤넬 등 최고급 명품 짝퉁을 만드는 시대에 종량제 봉투는 상대적으로 위조하기 쉽고 감시도 소홀한 점을 악용해 최근 2~3년간 위조 사례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량제 봉투는 국내에서 한 해 평균 8억7000만장이 유통된다. 종류는 5 · 10 · 20 · 100ℓ 등 4종으로 가격은 120~2400원이다. 봉투 한 장당 가격을 평균 900원으로 보면 시장 규모만 7800억원에 달한다. 유아 분유 시장이 연간 4000억원,설탕 시장이 9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쓰레기 봉투'가 아니라 '금 봉투'시장인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품시장의 10~20%가 짝퉁 봉투에 잠식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짝퉁 제조업자들은 4500~5000원 하는 20ℓ짜리 봉투 10장을 2000~3000원에 슈퍼마켓 등에 넘기고 있다. 유통업자들은 이를 정상가격보다 5~10% 싸게 팔아 차익을 남긴다. 환경부 관계자는 "3년 전 성남시는 가짜 종량제 봉투가 대량 유통되면서 연평균 100억원가량의 종량제 봉투 매출액이 10억원가량 줄기도 했다"며 "가짜 종량제 봉투로 인한 지자체의 손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 및 경기지역의 30개 지자체에 종량제 봉투를 제작해 납품하는 에덴복지재단의 김기린 이사는 "시 · 군 단위로 디자인이 같은 경기도 등 지방은 가짜 유통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22일 전국 16개 시 · 도 청소행정과 담당자들이 환경부에 모여 대책까지 논의했다. 종량제 봉투 때문에 전국에서 담당자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선 각 지자체가 도입한 가짜 봉투 방지책과 다양한 추가 아이디어가 소개됐다. 안산시와 천안시 등 일부 지자체들은 자체 제작한 스티커를 붙이거나 바코드를 입력하고 있지만 환경부는 효과가 미비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가 일련번호나 바코드를 일일이 조회해봐야만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에선 또 위조지폐나 가짜 양주 유통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홀로그램이나 UV 형광물질을 종량제 봉투에 입히자는 얘기도 나왔다. 이 중 홀로그램이 가장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환경부는 지자체별로 예산 등 여건이 다른 만큼 토론 내용을 토대로 각자 대책을 마련해 내년부터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홀로그램 단가가 비싸 채택에 소극적이다. 홀로그램을 적용하면 봉투 제작 원가의 8~9%인 장당 4원이 추가돼 원가부담이 커진다. 종량제 봉투에 관한한 대책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한편,종량제 봉투를 불법제작해 유통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가 지난해 발의한 개정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통과돼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