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함정'에 빠진 정부…MB노믹스 수정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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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중소기업·서민 중시로 정책 급선회이명박 정부의 기업관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이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를 내세우며 기업 활동을 짓누르는 '전봇대'(규제) 뽑기에 주력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눠 바라보고 있다. 중소기업의 몫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읽혀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발언에서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국가경쟁력을 가지려면 대기업만 가지고는 안 된다"(5월14일) "대기업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6월20일) "대기업 캐피털 회사가 일수 이자보다 비싸게 받아서야 되겠나"(7월22일)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하니까 서민이 힘들다"(7월23일) 등 중소기업과 서민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26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고유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 전략을 만들라"고 청와대 수석들에게 지시했다.
청와대와 관가 주변에서는 MB(이명박) 노믹스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이 대통령의 기업관,그중에서도 대기업을 보는 관점이 예전과 달라진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은 원래부터 서민 중심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잘하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론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현대그룹 경영자 출신인 데다 부자(富者) 내각 논란,촛불시위 과정에서 부자들을 위해 정책을 펴는 것처럼 인식됐던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장 때는 월급을 다 기부했고 퇴임할 때는 서울시내 가난한 중 ·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중소기업 정책과 복지정책,서민정책을 주로 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집권 초반기에 비해 '양극화 해소'를 자주 강조하고 대기업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등 최근 들어 서민과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납품 단가 인하 강요,기술의 부당한 탈취,상습적인 하도급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는 등 다양한 압박을 대기업에 가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가진 자가 덜 베풀고 있다는 식으로 대결구도를 만드는 느낌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회 전반의 양극화는 정권의 잘못도,가진 자의 잘못도 아니다"며 "양극화의 덫에 사로잡히면 과거 10년의 분배주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스스로의 색깔을 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옛날처럼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며 한쪽만 편들면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특히 대통령이 한쪽에 대해 '틀렸다' '아니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양극화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서민과 중소기업이 당장 어렵다고 대기업들에 베풀라는 것은 대증요법"이라며 사고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사례를 보면 정부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면 오히려 더 경쟁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시장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이 중소기업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