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노믹스 수정하나] 靑 "親서민ㆍ中企 배려는 李대통령 평소 철학…바뀐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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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반엔 "기업이 甲" 작년 9월부터 대기업 책임론 강조
"대기업은 길만 열어주면 되고 中企는 정책으로 도와줘야"
靑, 포퓰리즘 해석 경계
"차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로 만들겠다. "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후인 2007년 12월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로 찾아가 재계 리더들에게 한 말로 현 정부 기업 정책의 뼈대가 됐다. '대불공단 전봇대' 발언과 함께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런 이 대통령이 최근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공 · 사석 회의 석상에서 사회적 약자,서민을 중요한 화두로 삼았다. 인식의 변화일까 아니면 해석의 차이일까. ◆발언의 변화는
이 대통령은 집권 초반엔 친기업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2008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그동안 대기업 규제를 없애지 못한 것은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고 5월16일 전국 세무서장과의 만찬에선 "기업이 조연이고 우리가 주역인 것처럼 국정을 폈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갑을(甲乙)이 바뀌었다"고 했다.
물론 현 정부 초반에도 이 대통령은 중소기업의 중요성과 함께 서민,중도실용 발언을 꺼냈다. 2008년 9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부가 세운 정책은 대부분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기조의 변화로 볼 수는 없었다. 지난해 9월부터 대기업의 책임론과 함께 투자 확대를 부쩍 강조하면서 흐름의 큰 변화가 감지됐다. 이 대통령은 9월2일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 보고회에서 "대기업의 선제적 투자는 사회적 책임이자 소명"이라고 했고,며칠 후 남대문시장에서 주재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선 이례적으로 "(기업 간 가격)담합 사례가 있으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올해 들어서도 기업 투자를 요청하는 발언이 빈번했다.
1월7일 '비상경제대책회의 1년 점검회의'에서 "민간 기업의 본격 투자가 시작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최근엔 "대기업이 현금 보유량이 많다. 투자를 안 하니 서민이 더 힘들다"며 급기야 대기업의 투자 환경도 점검해야 한다는 식의 보다 직설적 화법을 구사했다.
◆이 대통령 "내 뜻은 反대기업 아니다"이 대통령이 이렇게 대기업에 대해 변화된 발언을 한 배경은 뭘까. 일각에선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까지 등장한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살리기라는 구호와 함께 서울 강남북,자본과 노동 등을 포괄하는 성장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이라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6일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권력 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에 대한 압박은 레임덕을 조기에 막고 50%에 달하는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국정 장악력을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김영봉 중앙대 교수는 "선거에서 지면서 친서민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소위 '정의로운 시장 경제를 만들겠다'는 인식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청와대는 이런 시각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대립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또한 친서민 노선도 "갑자기 나온 게 아니라 이 대통령의 평소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녹색위 회의에서 "대기업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정부가 직접 돕는 게 아니라 규제 없이 길만 열어주면 된다"며 "하지만 중소기업은 정책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 대기업은 국제시장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나의 뜻이 반 대기업, 반 시장경제로 이해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존 산업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시각 변한 게 없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이 대통령 시각 자체가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시장기능에 맡겨 놓는 게 도와주는 것이며, 정부는 힘없고 어려운 사람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정치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인식의 큰 틀에서 변한 게 아니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청와대를 떠난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은 원래 친서민 중소기업 사랑을 강조해왔다"며 "대기업은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잘한다. 그러나 중소 · 중견기업의 경우 어려움이 있어 정부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는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유지했으며 친기업 소리를 들으며 '타임오프'를 실시했다"며 "대기업이 최근 좋은 실적을 내는 데 정부가 일정 정도 기여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서민들이나 중소기업에까지 경제 회복의 온기가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며 "양극화가 심화되면 서민층,중소기업 등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대기업이 사회적 활동에 적극 나설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으나 현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을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시장질서는 시장 스스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갈등구조로 비쳐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시장 질서는 시장 스스로 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중소기업을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미래 전망은 보지 않고 대기업에 무조건 투자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