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IPO 경쟁이 공모가 부풀려

기업 입김 커져 막판 주관사 교체도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증권사들의 치열한 영업 경쟁이 공모가를 부풀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IPO 기업과 주관 증권사가 철저히 '갑'과 '을'의 관계로 바뀌면서 공모가 결정에 기업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양전지용 폴리실리콘 제조 장비업체 세미머티리얼즈가 연내 상장을 앞두고 IPO 대표 주관사 교체에 나섰다. 이 회사는 2007년 한국투자증권과 대표 주관사 계약을 맺었지만 최근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대신증권과 별도로 계약했다. 세미머티리얼즈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최근 웅진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상장시킨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장 직전에 주관사 교체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종종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지난해에도 진로가 상장 직전에 대표 주관사를 우리투자증권 단독에서 삼성증권과 공동 주관으로 바꿔 논란을 빚었다. 한미파슨스도 현대증권이 실사까지 마치고 주관 계약을 맺으려 했지만 막판에 삼성증권으로 결정됐다. 삼성증권 대우증권 컨소시엄이 따낸 인천공항공사 IPO 주관도 첩보전 이상으로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증권사들의 주관사 따내기 경쟁 과정에서 공모가가 부풀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들이 발행 기업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공모가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영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7년 공모가의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증권사가 되사주는 풋백옵션 제도가 폐지되면서 증권사들이 공모가에 책임을 지지 않는 점도 이런 우려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종 공모가는 기관 대상 수요예측을 통해 결정되지만 발행 회사와 주관사가 담합하면 공모가를 높게 책정할 여지가 있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런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비상장 기업이 상장 청구 이전 일정기간 주관 증권사를 바꿀 수 없도록 하는 '인수업무 규정'을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장심사 청구 3~6개월 전까지 주관 증권사를 바꿀 수 없었지만 2007년 이 규정이 폐지돼 증권사들의 입지가 더 약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