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양혜규‥"대중 만족시키려 드는 순간 내 작품은 끝…언젠간 소통 믿어"
입력
수정
세계적 설치미술가 양혜규그는 잘 웃지 않았다. 표정도 차가웠다.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작가라지만,이렇게 딱딱한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차림새 역시 블랙 일색이다. 반소매 셔츠와 바지,구두와 양말이 모두 검은 색이다. 얘기할 때도 까만 볼펜으로 메모를 하거나 선을 그리며 흑백톤으로 설명했다.
카네기뮤지엄·뉴욕현대미술관…해외 10여곳에 작품 설치 명성
백지 팩스 작업 '문맹 잔여물'처럼 우리는 '내용의 부재' 시대에 살아
휴식 잊고 기절할 때까지 작업해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설치미술가 양혜규씨(39).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화제를 모은 그가 올해 또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뮤지엄과 까다롭기로 이름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작품을 잇따라 사들인 것.해외 미술관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10여점에 달한다. 스페인 무르시아미술관과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미술관,연방문화재단 할레안더살레,베스트팔렌 주립미술관,미국의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휴스턴미술관,워커아트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최근 MoMA가 소장한 작품은 그가 살던 독일 베를린의 집 부엌을 기초로 한 설치작품이다. 자신의 부엌 크기에 맞춰 철골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일상용품과 가전기기,부엌 집기 등을 융합해 새로운 공간의 의미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그의 표현대로 '좋게 말하면 고유하거나 개성적이고,나쁘게 말하면 소통이 쉽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 작업은 치열하고,저 또한 치열하고,고통을 쉽게 승화시키는 것도 원치 않아요. 전 쉽게 악수하는 분위기를 '유보'하려고 하죠.사람들은 생각이나 말을 편리하게 정리하면서 각진 상태로 놓아두지 않고 동그랗고,부드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액자를 대패질하지 않고 거친 상태로 놔두라는 게 제 방식이에요. 그러면 안 되나요?"
30분 이상의 '탐색기'를 거쳐 작품 얘기를 시작하자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화랑 전시실에 걸린 그의 작품은 베를린 집에서 쓰던 라디에이터를 차용한 설치미술.제목 '만토이펠 거리 112((Manteuffel strasse 112)'는 베를린의 집 주소였다. "라디에이터 크기에 맞는 철제 박스 속에 전구를 넣었고 앞 표면은 베네시안 블라인드로 꾸몄습니다. 안방과 욕실,화장실,부엌 등에 있는 라디에이터 7개를 오브제로 했죠.원래 집에 있던 높이 그대로 설치했습니다. 그동안 해온 가전제품 조각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죠."그는 이 '추상적 철제 부조물'에 대해 "매체 분류 방법만으로는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를 것"이라며 "설명을 덧붙이자면 예전부터 한 작업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초가 된 작업은 '생 브누아가 5번지'였다. 그것 역시 집 주소다.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살던 집이라고 했다.
파리 시내 몽파르나스 공원묘지에 있는 뒤라스의 무덤을 자주 찾던 얘기를 꺼냈더니 마침내 그가 웃음을 보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그의 남편이자 동료인 레지스탕스 운동가 로베르 앙텔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죠.제가 쓰던 냉장고와 세탁기,보일러,욕실 캐비닛에 뒤라스의 주소를 작품 제목으로 취하면서 저와 뒤라스의 이야기를 중첩시켰어요. 뒤라스는 그 집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죠.학업,결혼,집필,레지스탕스 운동….특히 수용소로 끌려가 송장이 다 돼 돌아온 남편을 헌신적인 간호로 살려낸 부분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생 브누아가 5번지는 뒤라스의 집인 동시에 샤를 드골 치하 반스탈린주의 프랑스 공산주의자,지식인,레지스탕스의 만남을 포함한 정치적 함의를 함께 지니고 있죠.이는 뒤라스와 앙텔므에 의해 각각 《고통》과 《인간종》이라는 저서를 낳게 했어요. 저는 여기에서 강렬한 정치적,유기적,사적 공간의 배경이 된 상황에 주목했고 이를 8점의 가전기기 조각으로 작품화했습니다. "진지하게 배경 설명을 곁들이던 그가 다시 '만토이펠 거리 112' 얘기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열'의 기능을 강조했다. "열이란 감각,피부로 느끼는 것이며 나를 따뜻하게 하거나 시원하게 해주면서 '간호'하고 도와주지요. 이런 '사물에 대한 의인화'는 제 작업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브제 안에 설치된 전구는 전기라는 물질을 통해 전체의 공간이나 빌딩과 연결돼 있어요. 블라인드 색깔은 주관적입니다. 침실에 있던 라디에이터 형상에는 노란색을 썼죠.이는 광기를 나타내지요. 쉬고,자고,먹는 휴식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는 광기 말이에요. "
이런 설명을 듣지 않고 그의 작품을 이해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는 '대중을 만족시키려 드는 순간 끝'이라고 했다. "그냥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중에 대한 커다란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중에,언젠가는 소통되리라는 믿음,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
그는 "2006년 인천에서 가진 '사동 30번지' 전시 이전에도 내 작업들을 일궈낸 전신이 있었고 이를 꾸준히 본 사람들은 하나의 역사성을 갖게 된다"며 "관람객들은 동반자이자 목격자"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금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전 항상 전시처럼 살고자 한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친절한 걸 진심으로 하고 싶었다면 사회사업을 했을 거예요. 그건 나중에 더 나이 들어 하고,지금 힘 있을 때는 더 어려운 걸 해야죠."서울대 미대 졸업 후 독일로 떠났던 그는 런던,파리 등 여러 곳을 떠돌며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파리에서 지낼 때는 팩시밀리로 작업한 적도 있다. 팩스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친구에게 팩스를 보낸 뒤 다시 보내라고 부탁하면 백지가 오고 간다. 그 종이들을 모아 작업한 게 바로 '문맹 잔여물'이다. "빈 종이지만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소통에 관한 거죠.실제 소통한 내용은 비어 있습니다. '문맹'처럼 사람들에게 내용의 부재를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죠."
오로지 자신을 '치열함'의 극점으로 몰아붙이는 이 작가는 도대체 언제 쉴까. 그는 "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휴일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제가 만든 비디오 작품 '휴일 이야기'에 내레이션이 나옵니다. '쉰다'는 것에 대한 글인데 이렇게 했어요. '혁명은 휴일을 모른다. 하지만 혁명은 명절이라는 휴일을 만든다. 위기는 쉴 줄을 모른다. 노숙자도 휴일을 모른다. 사기꾼도 휴일을 모른다. 나도 휴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이죠."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그가 던진 한 마디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하필 블라인드에 관심을 갖는 이유요? '막힌 것이면서 트인 것'이기 때문이죠.건축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의 일상 공간은 너무 뻥 뚫려 있고 개방돼 있으며 모든 게 다 노출돼 있어요. 이건 또 다른 '감시'와 같죠.자유롭자고 한 게 자유를 속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할까. 그래서 저는 닫힌 듯 열린 블라인드를 좋아합니다. "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