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 길목에서] '스몰자이언츠' 많아야 국가 앞날 밝다

급속한 고령화 내수시장 위축 불보듯
강소中企 육성·해외 개척 적극 나서야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2016년 브라질월드컵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축구 전문가는 우리나라가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면 지금부터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을 생각하면,이 말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의 99.9%가 중소기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은 오늘도 힘든 하루의 연속이다. 밀려드는 중국산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일할 사람이 없어 중소기업 경영인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뿐만 아니라 동네 상권을 놓고 대기업 슈퍼마켓과도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앞날은 어떠한가? 우리 중소기업이 마주칠 미래도 그리 녹록지 않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수년 내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다는 일본을 능가하는 속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대 문제는 내수시장 위축이다. 고령인구가 많다는 것은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청장년층의 부담이 늘게 됨을 의미한다. 고령층은 물론 청장년층의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체 매출 중 수출비중이 높은 대기업과는 달리 내수시장 의존도가 80%를 넘는 중소기업에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시기다. 먼저 교자채신(敎子採薪)이라는 한자성어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가까운 곳에서 땔나무를 챙기려는 아들에게 말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는 다른 사람이 먼저 해갈 수 있으니,그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가까운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 이에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닫고 백리 떨어진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떠난다. 다시 말해 교자채신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쓴다'는 의미다.

그리고 독일 중소기업의 경험을 배워야 한다. 독일에는 연 매출 5000억원을 올리며,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히든챔피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하나의 기술과 제품으로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을 파고든 기업들이다.

안이 어둡고 힘들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제는 우리 중소기업도 교자채신의 정신으로 독일의 히든챔피언처럼 생존하는 것이 절실하다. 먼저,국내 시장의 안정된 납품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 가보지 못한 미개척 시장을 찾아 나서는 용감함과 과감성을 발휘해야 할 때다. 이를 실현하려면 세계 최고 수준을 염두에 둔 연구 · 개발(R&D) 투자를 해야 하고,그래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런 중소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을 뜻하는 '스몰 자이언츠'들이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맹활약한 박지성,이청용,박주영,기성용,차두리를 보라.이들은 모두 유럽무대에서 뛰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밝은 미래와 발전을 위해 편안한 국내리그를 마다하고 힘든 유럽리그를 선택했다. 덩치가 큰 유럽 선수에게 밀려 힘들어도,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도 자신의 실력 하나만으로 전쟁터와 같은 유럽의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들은 부딪치면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성장했다. 그래서 머나 먼 아프리카 땅에서 원정 16강이라는 쾌거를 만들었다. 이들에게는 국내리그와 비교할 수 없는 더 많은 부와 명예가 주어졌다. 유럽 진출을 늘려야 한다는 축구 전문가의 말도,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바란다면 제2의 박지성,제2의 이청용이 나와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시장을 누비는 삼성전자의 휴대폰에,현대자동차의 소나타에 우리 중소기업이 개발해 납품한 수많은 부품이 들어 있다. 아마 중소기업의 숨은 노력과 실력이 없었다면 세계 시장을 누비는 이런 제품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안정적인 납품에 기반을 둔 국내 시장에서의 작지만 강한 기업은 의미가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인 스몰 자이언츠가 되어야 한다. 그런 스몰 자이언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중소기업의 미래는,아니 한국 경제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며,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도 한발 더 다가올 것이다.

김기문 <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